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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안정복이 보았던 <기우자선생문집騎牛子先生文集> 3권은 어디에

by 버블티짱 2021.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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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조선초를 살았던 기우자騎牛子 이행李行(1352-1432)이라는 분이 있었다.

이 분 문집이 조선 초 어느 시점엔가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의 비점을 붙여 3권으로 판각 간행된 모양인데, 이미 18세기에 그 판본을 보았다는 사람마저 드물어졌다.

지금 있는 <기우집騎牛集>은 1872년 간행한 것으로, 부록을 빼면 분량이 정말 얼마 안 된다.

시 같은 경우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동문선> 같은 데서 일부가 인용된 것을 긁어모은 것이라, 두 구절만 남은 게 대부분이다.

만약 조선 초에 간행한 그 판본이 남아 있었더라면 어땠을지 궁금한데, 혹 어느 곳에라도 비장秘藏되어있기를 바랄 뿐이다.

“생각컨대, 우리 14대조 기우자 어른은 고려 말기에 해당하고 惟我十四代祖騎牛子府君 當麗氏末

9대조 월연 어른은 중종 때에 해당한다. 九代祖月淵府君 當中廟朝

지금에 이르기까지 혹 400년의 머나멈을 지나고 혹 수백 년 오래됨을 겪었으며 至今或過四百年之遠 或閱數百年之久

또한 여러 차례 병란을 거쳐 남긴 글과 사적이 모두 전하지 않는 바 되니 ... 而又屢經兵燹 遺文事蹟 俱無所傳 …

내가 일찍이 순암 안정복 공을 만나뵈었는데, 안공이 묻기를 不肖 嘗拜順菴安公 安公問

"그대 집에 반드시 <기우자선생문집>이 있을 텐데 얻어볼 수 있겠는가?" 乃家必有騎牛子先生文集 可得以見諸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르기를 문집이 있어 세상에 전한다 합니다만, 전하지 않습니다. 어찌 전란 후에 잃어버려 전하지 않는 게 아니겠습니까." 라 하였다. 對曰 輿誌云 有集傳世 而無傳焉 豈亂後遂失 不之傳耶

안공이 말하기를 "아닐세. 내가 일찍이 젊었을 때 서울에 왔다가 아는 분 서재에서 <기우자선생문집> 3권을 보았다네. 安公曰 否 余纔弱冠入洛 見知舊匝座中 有騎牛子先生文集三卷

1권은 시요, 2권은 문장이었는데, 시는 곧 모두 양촌 권근의 평점이 있어 지금 <삼봉집>이 간행되어 전하는 것과 같더군." 一卷詩 二卷文 詩則皆經陽村評點 如今三峯集刊傳者

이라 하고 서가에서 중국판 <대학혹문>을 꺼내 손을 들어 보이며 말하기를, "그 책 모양과 길이, 너비가 대략 이와 같았는데, 그 후 40여 년이 지나 다시 서울에 와서 찾고자 하였으나, 당시에 알던 사람들은 모두 다 죽고, 뒤에 태어난 이들은 아는 자가 없었으니, 마땅히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을 것일세."라 하였다. 仍抽架上唐板大學或問 擧手示之曰 其冊樣長廣 大略如斯矣 厥後四十餘年 更入洛求訪 則當時知舊 已盡死 後生無知之者 而當有藏於藏處也

아아! 세상에 과연 어른의 문집이 있으나 끝내 얻어볼 수 없었으니, 그것이 통한痛恨 됨이 더욱 어떠하겠는가. 혹자는 말하기를, 하늘이 기이한 보배를 끝내 감출 이치가 없다 하였다. 그런 까닭에 혹 잠시 거두어졌다 다시 나타나기도 하니, <서하집西河集>을 보면 증명되지 않는가. 내가 장차 이를 기다리노라." 噫 世間 果有府君文集 而終不得而見之 其爲痛恨 尤當何如也 或曰 天之於奇寶 無終閟之理 故或暫收而復出 觀於西河集 可徵也 不肖其將惟是之竢歟

- <월연선생문집> 지識(이천섭李天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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