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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것들한테서 왔다는 제주 삼양동 옥제품 이 유물을 소장한 국립제주박물관 설명은 다음과 같다. 국립제주박물관 전시실 산책_옥환玉環 Jeju National Museum Exhibition Hall Tour: Jade Ring 제주에서는 옥玉이 나지 않습니다. 그 말인즉슨, 제주에서 옥을 구하려면 바다 건너에서 가져와야 한다는 이야기이지요. 여기 보시는 ‘옥환玉環’, 곧 옥을 다듬어 둥글게 만든 고리도 제주 바깥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옥환은 제주 삼양동 유적의 한 주거지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옥환이 나온 주거지의 규모로 보아, 이것을 썼던 이는 마을의 지배자였다고 여겨집니다. 비슷한 모양의 옥환이 기원전후 시기의 낙랑樂浪 유적에서 나온 적이 있어, 육지와 교역하며 구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안쪽 지름이 3.5cm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물건이지만,.. 2024. 4. 15.
인위의 추상을 엎어버리는 비 작가들이 구축하는 추상은 인위다. 이만한 추상이 어딨겠는가? 가장 위대한 추상작가는 비요 물이다. 2024. 4. 15.
분노에 차서 다시 달려간 배꽃, 간밤을 휩쓴 빗소리에 친구가 나들이 하라고 불러서 득달같이 달려갔다. 생업에 치여 그 또한 정신 차리지 못하는 일상이요 자발백수인 나는 요새 무슨 학술이벤트랍시고 하나 만들어 준비한다고 넋이 나갔으니 함에도 치어박혀 지낼 수만은 없어 더러 짬을 내서 바깥 구경을 하거니와 그런 바깥 구경 한 번 하는 일로 동네방네 떠들어대는 일도 요새는 다 부질없는 짓이라 여기기에 계우 그런 일이 있었노라 해서 짐짓 인생 조망하는 듯한 한두마디 덧보태어 일기 겸해서 그런 정리를 하는데 지나지 아니한다. 밤을 새다시피한 여파인지 내내 몸은 무겁기 짝이 없어 죽죽 늘어졌고, 눈은 계속 감겼으니, 애써 마중 나와 내내 드라이브니 꽃구경이니 해서 내내 태어다닌 친구한테는 미안하기 짝이 없었으니, 더구나 날씨는 왜 그런지 느닷없이 30도 육박하는 그 .. 2024. 4. 15.
폼페이서 건진 아폴로 님 이분 아폴로 라 하시는데 폼페이 유적 화산재더미 출토품이라 지금은 나폴리고고학박물관 Archaeological Museum of Naples에 계신다. 딱 봐도 그리스 원작을 모델로 이탈리아에서 청동으로 제작한 것인데 베수비오화산이 서기 79년에 폭발하고 그 여파로 그 인근 폼페이라는 도시가 매몰되었으니 당연히 이 작품은 그 이전에 만든 것이다. 기원전 1세기 무렵 작품으로 본다고. 이 분 얼마전 나폴리에서 친견하고 사진 잔뜩 찍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 귀찮다. 여하튼 강렬하잖아? 물론 본래 저랬겠는가? 화산재에 묻혀서 저리되었겠지만서두 말이다. 2024. 4. 15.
이탈리아는 누가, 언제, 왜 만들어냈는가? 지금의 남북한을 합친 영역은 연원으로 보면 조선왕조 세종시대를 직접 조상으로 삼지마는 그 엇비슷한 영역은 고려를 지나 이미 문무왕에 의한 일통삼한에서 밑그림을 그리니 그 연원이 물경 천사백년을 헤아린다. 중국 또한 그 영역이 확장되기는 했지만 진한시대 통일제국에서 지금의 중국이란 영역을 칠하기 시작하니 그 역사는 물경 이천년이다.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면 프랑크 왕국을 발판으로 삼는 프랑스 독일 스페인을 필두로 영국 역시 복잡하기는 하나 대략 천오백년 안팎에서 지금 영역의 큰그림이 완성된다. 문제는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불과 150년 전인 전세기에 이른바 이탈리아 통일왕조를 완성하고 그것이 우리가 아는 이태리라는 밑거름이 되었으니 놀랍게도 이태리는 지금의 이태리를 그릴 만한 통일 영역 국가를 단 한 번도 .. 2024. 4. 15.
빼빼로 고려 조각의 전형 진천 용화사 석불 고려시대가 되면 탑도 빼빼로, 불상도 빼빼로가 유행한다. 저런 석불은 한반도 중부에서 일대 유행하는데 안성에 가장 많다. 사진은 진천 용화사 석불로 높이 오미터다. (2016. 4. 15) *** 문화재 지정명칭은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이라 아래 참조. http://www.grandculture.net/jincheon/toc/GC02700393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 - 디지털진천문화대전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용화사에 있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전기의 석조 불상. [개설]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584-4번지 용화사 경내에 있는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은 통일신 www.grandculture.net 2024. 4. 15.
나름 열정이 있던 시절에 조우한 진천 노원리 마애불 2016년 찾은 진천 노원리 마애불이다. 내비 믿고 같은 군 사곡리 마애불이란 데를 찾아갔다가 저런 마애불이 인근 어딘가에 있다는 안내판 발견하곤 다시 저기로 내비 찍어 갔지만 산중에 있어 쉽사리 찾을 수는 없었으니 결국 현지 주민들께 여쭈어 찾아갔다. 당시 나는 해직 중이었으니 그때 진천군 종박물관에 근무하던 원보현 선생이 김유신 특강을 마련해주는 바람에 그를 준비할 요량으로 무엇보다 진천이 어떤 곳인가 알아볼 필요가 있었기에 일박이틀을 투자해 진천군내 소재하는 지정문화재는 대강 훌었으니 그때 조우한 부처님이다. 이젠 저런 열정도 사라지고 야부리만 남았다. 8년 전엔 찾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는데 지금은 사정이 좀 나아졌으려나 모르겠다. 저 마애불 설명은 아래로 갈음한다. 그러고 보니 문화재 정식 지정명칭.. 2024. 4. 15.
제경편帝京篇 by 낙빈왕駱賓王 山河千里國, 산하는 천리 城闕九重門. 성궐은 구중궁궐 不睹皇居壯, 황궁이 웅장한지 보지 못하면 安知天子尊? 천자의 존엄을 어찌 알리오? 皇居帝里崤函谷, 황궁은 효산(崤山)과 함곡관에 둘러싸이고 鶉野龍山侯甸服. 순수(鶉首)와 용산은 후복(侯服)과 전복(甸服)을 거느리네 五緯連影集星躔, 다섯 개 별이 연이어 하늘에 궤적을 그리고 八水分流橫地軸. 여덟 개 하천이 지축을 가로지르며 흘러간 秦塞重關一百二, 진 지방 관문은 둘이 백을 당할 만큼 굳세고 漢家離宮三十六. 한나라 이궁은 서른여섯 개 桂殿嶔崟對玉樓, 계전(桂殿)은 드높이 옥루와 마주하고 椒房窈窕連金屋. 초방전(椒房殿)은 깊숙이 금옥과 이어지네 三條九陌麗城隈, 세 줄기 아홉 갈래 길이 성 모퉁이를 돌고 萬戶千門平旦開. 천문만호 궁문들이 새벽에 열리네 復道斜.. 2024. 4. 14.
3천년 전 어린이 집단 매장 시설 오만서 발굴 오만 Oman의 술탄 카부스 대학 Sultan Qaboos University 고고학팀이 소르본 대학 Sorbonne University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이 나라 남부 알 바티나 Al Batinah 州 Governorate 루스타크 Rustaq 라는 지역 윌라야트 Wilayat 라는 곳에 있는 '마나키 Manaqi 유적을 조사한 결과 3천 년 전 철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독특한 어린이 장례용 건물을 발견했다고. 이번 발견은 오만 반도에서 어린이 매장을 위한 장례 건물로는 처음인 만큼 장례 의식에 대한 이해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됐다. 마나키 유적은 남부 알 바티나 주에서 가장 큰 철기시대 정착지 중 하나다. 오만 문화유산청이 파리 소르본 대학 팀과 협력하고 문화재 관광부가 감독하는 이번 발굴 작업.. 2024. 4. 14.
정원 돌 치우다가 찾아낸 바이킹시대 대장장이 무덤과 그 도구들 2014년 가을, 노르웨이 남서부 해안 Sogndalsdalen 라는 데 사는 농부 Leif Arne Nordheim은 자기집 정원에서 성가신 납딱한 돌덩이 몇 개를 치워버리겠다면서 옆집에서 굴착기를 빌렸다. 그렇게 치워나가던 마지막 판돌을 들어올리고 보니 망치와 집게 같은 철기 공구가 몇 점 나왔다. 딱 보니 묻은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그 철기 공구 더미에서 이상하게 구부러진 칼날도 찾았는데 이건 뭔가 찜찜하다 해서 관할 관청 문화부에 신고했다. 블라블라 하니 와 바라 이상한 물건들이 나왔다. 이렇게 해서 베르겐 Bergen 대학 박물관 소속 고고학도들이 현장에 도착해 시작한 정식 발굴은 경악스런 성과를 낳았다. 크기가 다른 망치 석 점과 앙빌 두 개, 대장장이 집게, 석탄 집게, 석탄 집.. 2024. 4. 14.
몽땅 털린 몽골 노용올 흉노무덤 흉노를 내가 논할 때면 매양 써먹는 사진이라 2009년 8월 14일 그쪽 행사 취재차 몽골을 찾은 김에 일행들과 더불어 몽골 쪽 안내를 쫄래쫄래 따라 가 실견한 노용올(노인울리) 흉노무덤 발굴현장이라 당시 저 무덤은 몽골 팀이 러시아팀과 공동조사를 벌여 이른바 매장주체부까지 노출한 상황이라 그 생생한 현장을 맛보았다는 기억으로 각인한다. 저 노용올 무덤은 이 업계선 아주 유명한 데라 일찍이 알려졌거니와 조심할 점은 몽골고원 흉노 흔적은 거의 예외 없이 후기 흉노 그것이라는 사실이어니와 우리가 생각하는 강성한 흉노, 곧 한 고조 유방을 개박살내고 여태후한테는 이젠 과부되었으니 나한테 시집오라 맘껏 조롱한 그 전기 흉노가 아니다. 저 강성한 흉노는 실상 그 주무대가 중원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곳이니 곧 고비 .. 2024. 4. 14.
에트루리아가 애용한 원통형 용기와 그 다양한 손잡이 장식 로마가 등장하기 이전 이탈리아 반도 주인 노릇을 한 에트루리아 Etruria 시대 그네가 남긴 유산 중 하나로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품인 이것은 청동 시스타 bronze cista, 곧 원통형 보석함 손잡이라 하는데 제작시기는 대략 기원전 400-380년 무렵으로 본다 한다. 잠의 신 히프노스 Hypnos 와 죽음의 신 타나토스 Thanatos 가 트로이 전장에서 죽은 제우스의 아들 "화석 투구를 쓴 신과 같은 사르페돈"의 살해된 시신을 운반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해석하곤 한댄다. 이 유물에다 박물관은 Sleep and Death Cista Handle 라는 이름을 붙였다. https://www.clevelandart.org/art/1945.13 크기는 받침대를 포함할 때 18.5 x 18.3 cm.. 2024. 4. 14.
여말선초 사전私田은 딱 불교 정도의 욕받이 여말선초의 사전은 지금 한국사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공공의 악이 아니었다. 무슨 소린가 하니 그 당시 사전은 딱 불교 정도의 욕받이였다는 말이다. 여말선초 불교를 공격하면서 하는 것도 없이 염불만 하며 곡식만 축낸다, 이것인데 이거야 불교만 그렇겠는가? 모든 종교가 다 그렇다 할 것이다. 이걸 공격을 한다면 지금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찬란한 불교문화는 어떻게 나오겠는가? 사전私田이 그렇다. 사전 대신 공전公田이 정의다, 라고 하는 게 지금 한국사의 스탠스다. 아니다, 우리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냉정히 한국사를 한 번 들고 읽어 보기 바란다. 당시 사전을 쓸어버리고 공전 일색으로 만든 과전법체제, 이것을 찬상하며 조선왕조 개창의 정당성을 옹호한 것이 현재 한국사 기술이다. 한국사에서.. 2024. 4. 14.
갈리아에서 뿔나 즉사한 로마 군인 머리 양쪽으로 사람이 웬 뿔이 났냐 하겠지만 저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이 좀 무시무시하다. Skull of a Roman legionary, who died during the wars of Gaul, about the year 52 BC. Dated to the first century BC. Death was certainly instant. 기원전 52년경 갈리아 전쟁에 사망한 어느 로마 군단병의 해골. 시대는 기원전 1세기. 죽은 원인은 볼짝없이 즉각적이었다. 간단히 말해 저렇게 뚫려서 그 자리서 즉사했다는 뜻이다. 저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정보가 아래 아티클에서 보인다. 2100-year-old skull of Roman legionnaire pierced with a lance 이 기사 작성.. 2024. 4. 14.
여말선초 사전개혁 평가는 해방 후 토지개혁사관이 투영된 것 간단히 할 말만 쓴다. 현재 한국사에서 여말선초의 사전私田 개혁에 대한 평가는 전혀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니다. 한국사가 여말선초의 사전개혁과 공전公田에 입각한 과전법 체제를 긍정하는 입장으로 본다면 당시 동아시아 다른 나라, 중국과 일본의 토지제도의 발전을 전혀 설명할 수 없다. 이 두 나라 어디도 공전제가 붕괴한 후 한국처럼 격심하게 사전을 쓸어버리고 공전제로 회귀한 전례가 없다. 이건 여말선초의 사전개혁이 그 자체 상당히 평가가 왜곡되어 있다는 뜻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말선초 사전개혁에 대한 현행 한국사의 평가는 해방후 토지개혁사를 보는 시각이 투영되어 있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당시 사전 토지 문서를 모아 한꺼번에 불태웠는데 사흘 밤낮을 타올랐다는 것이고 보면, 이는 쉽게 말하면 일본 무.. 2024. 4. 14.
여말선초 과전법을 혁명이라 부르는 무신경 여말선초의 사전혁파와 과전법체제의 성립을 우리는 신진사대부의 대두와 연결해서 일종의 개혁, 혁명으로 본다. 여말에는 사전과 농장이 급증하고 토지침탈이 심해 권문세가의 횡포가 심했는데 이걸 때려 엎은 것이 사전개혁과 과전법체제로 문제를 일거에 해결했다는 시각이다. 이걸 한 번 보자. 당시 사전문제는 한국만 겪던 문제가 아니고, 동아시아 모든 지역에서 공통으로 골머리를 썩던 문제였다. 정확히는 중국은 균전제 붕괴 이후, 일본은 율령체제의 붕괴이후부터 이미 공전이 무너지고 사전이 급증하여 사회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는데 이러한 상황은 우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우리의 후삼국의 혼란과 무신 정변 등도 모두 그러한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동양 삼국 중 이 위기를 우리처럼 사전 문서를 다 .. 2024. 4. 14.
여말선초 사전개혁은 정의의 승리가 아니다 현재 여말선초 사전개혁과 과전법 체제의 출범을 보는 시각은 송곳 하나 꽂을 곳 없이 겸병이 극성을 부리던 사전의 폐해를 종식시키고 사전을 혁파한 후 공전에 기반한 과전법 체제를 출범시켜 여말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신진사대부가 조선왕조를 개창했다. 이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필자의 의견을 적자면, 이 당시 사전혁파의 이유는 이게 아니다. 사전은 그렇게 공공의 악도 아니었다. 중국이건 일본이건 그 정도의 사전은 모두 있었고, 겸병이라고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겸병 없던 나라 나와 보라고 해라. 겸병하면 엄청난 것 같지만 일본사에서 비슷한 시기 발달한 장원 그것들이 전부 겸병의 결과물이다. 의심스럽다면 일본의 장원의 성립과정을 한번 일본사에서 찾아보기 바란다. 그게 겸병이 아니면 무엇이라는 말인가? 문제는 그런 겸병.. 2024. 4. 14.
메르넵타 Merneptah, 람세스2세의 아들 Sarcophagus of Merneptah Son and successor of Rameses II 19th dynasty. 고대 이집트 19왕조 파라오 Merneptah 묘실과 그의 시신을 안치한 석관이라는데 공개되는 곳인지 모르겠다. 저번 이집트 여행에서 봤는지 안 봤는지도 기억에 없다. 하도 단 기간에 엇비슷한 것들을 동시에 보는 바람에 말이다. 그 유명한 람세스2세 Rameses II 아들이자 그 후임 파라오라고. 저를 메르넵타 Merneptah 또는 메렌프타 Merenptah 라 읽는다지만 어차피 고대 이집트어는 모음 표기가 없으니 그런갑다 하면 되겠다. 그 의미는 '프타 신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데 신한테 사랑받아 무얼하겠는가? 어차피 죽음은 피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긴 안 죽었다 하겠지만.. 2024.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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