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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439

朝鮮의 제국대학 vs. 朝鮮帝國의 대학 요즘 때아닌 경성제국대학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정근식 외,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1)라는 책을 읽다가 도무지 웃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를 어떻게 끊어 읽을 것인가도 아니고, 거 참....이렇게 보면 예전 분들의 생각은 참으로 귀여운(?)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조선제국대학이라.....만약 그랬더라면 도하都下 각 신문에서 이라고 썼으려나? 이런 데서도 '정치적 올바름'을 찾다니 원. 그러나 '경성제국대학'이란 명칭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고 한다. 줄여 부르면 '경대京大'가 될 텐데 이미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이 '교다이京大'라고 쓰고있지 뭔가. 그래서 경성제국대학은 자기네의 줄임말을 '성대城大[죠다이]'라고 했다고 한다. *** relat.. 2023. 7. 2.
제주 삼별초 유적 항파두리성의 기념식수 제주 애월에 가면 항파두리라고, 고려시대 삼별초의 유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발밑을 가만히 보다보면 그 시절 기와나 청자 쪼가리가 보이곤 하지만, 오늘날 그래도 멀쑤룩한 면모로 전해지는 것은 1970년대 대대적으로 벌어진 보수 정화사업의 결과입니다. 그때 정권은 유달리 역사 속 영웅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국난극복, 반외세, 항쟁 관련 유적을 골라 손질하여 대내외에 보여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강화의 초지진이나 고려궁터 같은 곳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이 그때이고, 군데군데 끊기고 무너졌던 한양도성이 얼추 이어진 것도 그때입니다. 이곳 제주의 항파두리도 삼별초가 고려의 자존심을 지키며 몽골에 항거한 역사적 유적이라 해서 '복원'의 손길이 닿았습니다. 그 지나간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성터 한.. 2023. 7. 2.
1955년 심산 김창숙 출판사등록증 가끔 이런 것도 다 돌아다니나 싶은 물건들이 세상에 나오는 경우를 본다. 원래대로라면 성균관대학교 어느 문서창고에 깊숙히 들어있어야 할 서류거늘. '동방문화연구원'이 어딘지 모르겠는데 혹 '대동문화연구원'의 시초일는지? *** Editor's Note *** 출판사 대표 김창숙은 성균관대 창립자라 아마도 성균관대 부설 연구원 아닌가 한다. 저 등록증이 어찌 하여 나돌아다니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혹 심산과는 동명이인일 수도 있겠다. 2023. 7. 2.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그 답을 찾아서 (3) 출세의 시작, 권적과 권정평 1 12세기에 들어서면 자기 능력을 바탕으로 개경에 올라 벼슬을 살던 안동권씨가 사료史料에 나타난다. 권적(權適, 1094~1146)과 권정평(權正平, 1085~1160)이라는 인물이 그들이다. 둘 다 묘지명이 현재 전해지고 있어 가계와 생애를 어느 정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한데, 와 에 모두 등장하는 권적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의종毅宗 2년(1148) 작성된 「권적 묘지명」(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서는 권적의 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공은 안동부安東府 사람이다. 증조할아버지[曾王父]는 호장戶長 배융교위陪戎校尉인 휘諱 균한이고, 할아버지[大王父]는 정조正朝에 추봉된 휘 좌섬佐暹이며, 아버지[王父]는 검교태자첨사檢校大子詹事인 휘 덕여德輿이다. 권적의 증조부 권균한은 에 권행의 증손이자 우일품별장右一品別將.. 2023. 6. 29.
동경제국대 학생의 한달 경비 1938년 한 조사에 따르면 집에서 통학하는 동경제국대 학생은 한 달에 평균 27엔을 지출하는데 책에 10엔을 썼고, 하숙집에서 다니는 동경제대 학생은 한 달에 52엔을 쓰는데 책에 11엔을 지출했다고 한다. 생활비 20~30%를 책 사는 데 던진 셈. 어지간한 연활자본 책이 3엔 하던 시절, 10엔 11엔이라고 해봤자 서너 권 사면 끝이다. 거기에 펜이나 잉크, 공책 같은 문구류도 사야 했을 테니. 식비가 각각 4엔, 17엔이었다는데 이건 술값을 포함한 걸까? *** 이는 아마노 이쿠오 지음, 박광현·정종현 옮김, 《제국대학 - 근대 일본의 엘리트 육성 장치》, 도서출판 산처럼, 2002. 140쪽에 기초한다. *** Editor's Note *** 조선인 유학생의 경우는 어땠을까? 제대로 된 증언을 .. 2023. 6. 26.
화가 오타 기지로한테 쌩까임 당한 후지다 료사쿠 일본 근대 고고학 1세대로, 1921년 경주 금관총을 발굴해 우리에게도 유명한 고고학자 하마다 고사쿠 빈전경작 濱田耕作 (1881~1938)가 1924년 조선 땅을 다시 다녀간다. 그때 그와 함께 다닌 화가 오타 기지로 태전희이랑 太田喜二郞(1883~1951)가 하마다 행적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 그림 두루마리(에마키)로 만들었다. 그걸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선총독부박물관이 1941년에 사진으로 찍어갔다. 그 마지막 장면인데,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 후지타 료사쿠(1892-1960)가 하마다에게 이렇게 권한 모양이다. "센세이! 벚꽃 보러 안 가시렵니까?" 근데 뭐가 뜻대로 안되었는지, "밤벚꽃놀이 결의안"이 철회되고 만다. 이에 후지타군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가로등 아래 벚꽃이 흩날리는데, 손을 .. 202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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