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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214

[용인 석성산성]성벽을 눈앞에 두고도 성벽인줄 몰랐다. 사진 파일을 보니, 2012년 11월 20일이었다. 당시 석성산 정상에 있다는 “석성산 봉수”를 찾아 처음으로 석성산에 올랐던 것 같다. 정상석이 있는 곳을 보니 유물이 돌아다니고, 잘 다듬은 석재로 쌓은 석축이 보여서 사진을 찍었드랬다. 사진을 보면 이미 성돌을 빼서 벤치 지지대로 쓰거나, 나무 뿌리 주변에 둘러 놓는 등 훼손이 많이 됐었다. 그렇지만 암반을 따라 성벽 라인이 살아 있었다. 초짜 학예사였던 당시에는 이 석재들과 석렬이 성벽인줄 몰랐다. 나의 목적은 오로지 봉수였으니, 성벽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후에 이곳은 데크로 덮어 버려서 깔끔한 정상이 되었지만, 더이상 이 아래 성벽을 볼 수가 없다. (나중에 데크 교체 공사가 이뤄진다면, 그때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성벽이라는.. 2024. 4. 24.
[photo]부처님 오신날 준비하는 중 한 달정도 남은 부처님 오신날을 준비하느라 사찰마다 매우 분주하다. 봄을 맞아 연둣빛으로 물든 산중 사찰과 색색의 연등이 제법 잘 어울린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연등을 보며, 이번엔 모두 이뤄지길. 2024. 4. 18.
[photo]용인 석성산 봉수 유적(발굴부터 정비까지) 물론 이전에도 간단한 지표조사, 관방유적 조사, 종합정비계획 등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발굴조사를 추진한 것은 2017년이었다. 아래 사진은 2017년, 긴급발굴조사를 신청하고 문화재청 담당자의 현지조사날이었다. 아침에 갑자기 쏟아진 눈때문에 정상에서 눈폭탄을 맞으면서, 발굴조사 필요성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순식간에 내린 눈의 양이 적지 않았고, 급경사 산길을 내려가다가 차가 미끄러져서 정말이지 죽을 뻔했다. 다행히 이런 나를 가상하게 생각해줬는지 긴급발굴조사 사업으로 1억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문화재청의 긴급발굴조사 지원사업에 의한 발굴조사 성과가 좋아서, 이후에 건물지까지 발굴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20년 11월 13일 경기도 기념물 제227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봉수.. 2024. 3. 17.
용인 문수산 마애보살상과 문수사지(文殊寺址) 용인 처인구 원삼면에 있는 문수산(文殊山)은 산 이름으로 보아도 불교 색채가 짙다. 아마도 이 산 남쪽 중턱에 남아 있는 마애보살상으로 인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재(제1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인지역의 유일한 마애불이자, 본존불없이 두 보살상이 마주 보고 나란히 새겨져 있는 특이한 현상으로 인해 희소성을 갖고 있다. 두 보살상은 'ㄱ'자 형으로 마주 보고 있는데, 원래 가운데에 본존불이 있었으나, 떨어져 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 상태로는 단정할 수 없어서, 보살상 2구를 마주 보고 새긴 특이한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비어 있는 가운데를 채운 현세불이 궁금하시다면 ⬇️⬇️⬇️⬇️⬇️⬇️⬇️⬇️⬇️⬇️⬇️⬇️⬇️⬇️ 용인 문수봉 마애보살 가운데를 채운 현세불용인 문수봉 마.. 2024. 3. 15.
지자체에 “국가”유산을 강요하지 말라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지정 문화재도 “문화재”이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보호 관리를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동안 법적으로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지정문화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보호 관리 체계 안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럼 그동안 지자체의 문화재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문화재가 아닌 “비지정 문화재”를 왜 관리하고 보존하기 위해 책임을 다한 것일까? 그 이유는 지방자치법에 의한 지방자치단체 사무에 해당하기 때문인데, 지방자치법 시행령 「별표 1」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별 사무 중 시‧군‧자치구 사무에 “비지정문화재(향토유적 등)의 보존‧관리” 사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동안 기초지자체에서 이른바 “○○시․군 향토문화재 보호 조례”를 제정하.. 2024. 3. 11.
심곡서원과 친일파 한규복(韓圭復) 정암 조광조 선생을 모신 심곡서원(深谷書院)은 1985년, 1992년 두 차례 소장 전적을 도난당해서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심곡서원 강당 안에는 송시열이 찬한 1673년 강당기(講堂記), 1730년 숙종대왕 어제(肅宗大王 御製), 도암 이재(李縡, 1680~1746)가 원장으로 취임하여 제정한 1747년 심곡서원 본원 학규(本院 學規) 등 심곡서원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편액들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1931년과 1933년 심곡서원 중건 당시를 기록한 중건 상량문 편액과 조광조 선생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를 소재로 지은 한시 ‘행수가(杏樹歌)’ 편액이 남아 있는데, 찬자는 한규복(韓圭復, 1881~1967)이란 사람이다. 한규복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한 사람이다.. 2024.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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