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의 잠 못 이루는 밤
고국이 가까워져서인가? 동진東進해서 피우미치노 떠나 이스탄불 내려앉으니 두 시간이 순식간에 달아나니,
가장 먼저 앞서 시간을 앞지르는 고국과는 이제 불과 6시간 시차라
그 두 시간 때문인지 현재 새벽 두시를 향해 달리는 이스탄불 시침에도 나는 잠 못 이루고선 이런저런 노래 틀어놓고선 청승을 떤다.
이 삼 개월이 나한테는 단절일까? 연속일까?
그것이 나로서는 무척이나 궁금하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번 여행이 절반을 넘기던 시점, 실은 조기 귀국을 획책하다가 주저 앉았으니,
이 여행을 기다리며 표까지 다 끊어놓은 애들은 어찌 하냐는 마눌님 불호령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로마에 주저앉았으니, 그때부터 실은 애들 합류만 넋놓고 기다렸다.
아침저녁을 해먹여야 하는 그 초반 합류 아테네 체류는 눈코뜰새없이 바빴으니, 밥 해 먹이느라 허리가 휘었다.
이태리로 넘어가서는 가이드로 혼이 빠진 나날을 보냈다.
고국에선 가을 단풍이 시작하기도 전에 시작한 외유를 끝낼 시점이 진짜로 코앞에 다가 왔다.
예서 직항 노선을 타면 나는 아홉시간? 열시간 뒤면 인천에 닿을 것이다.
녹초가 된 애들은 지금 한창 골아 떨어졌으니, 양태 보니 한 놈은 저러다 새벽에 깨서는 왔다리갔다리요,
고등학생인 작은 놈은 깨우기 전까진 절대로 일어나는 법이 없다.
뭐 말로는 하루 네 시간 이상을 자 본 적 없다는데, 말짱한 거짓말 같기만 하다.
귀국할 날이 코앞에 와서인가? 두 시간 시차 때문인지 좀체 잠이 오지 않는다.
지금 숙소 앞으로는 보스포러스 해협이 펼쳐지고, 그 반대편 아시아 대륙에선 천오백만 대도시 이스탄불이 뿜어낸 불빛을 병풍 삼아 더러 배들이 오간다.
이쪽 갈매기들은 잠도 없는지, 아니면 저 불빛 때문인지 이 시간에 하늘을 난다.
애초 무엇을 위한 뚜렷한 여행이 아니었기에, 또 그렇다고 무슨 거창한 귀국 뒤 계획을 세우고자 한 것도 아니기에,
이런 무계획이 다가온 귀국 이후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귀국 뒤에는 이런 일을 하겠다 해서 하기로 한 일이 있었으나, 갈아엎어 버렸다.
없던 일로 삼기로 했으며 새판을 짜야 한다.
그렇다고 그 새판의 그림이 쉬 그려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대로 계획한 일 중 한두 개가 벌써 빠그라지는 소리도 들리고 해서 좀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렇게 해서 갖은 연줄 동원해 이런저런 일거리 만들어놓았지만, 이 연초에 벌써 빠그라지는 소리가 들리니 기분이 좋겠는가?
하긴 살아 보니, 계획한 대로 순순히 돌아가는 일 몇 개나 되었던가 싶기는 하다만, 다시 무에서 시작하려니 앞이 캄캄하다.
일단 당분간은 술먹는책방 영업상무 일이나 열심히 해 보려 한다.
술집 문을 열어 놓고선 오라 삐끼질했으니, 그에 속아 몇몇 지인이 찾아주기는 했지만,
막상 그리 초대한 놈은 아테네며 로마며 베네치아며, 여기 이스탄불까지 밖으로만 싸돌고 있으니 이 짓도 못할 일이다.
이스탄불 도착과 더불어 돌린 세탁기에서 빨래를 빼니 온 집안이 빨래통이다.
빨래는 마르는데 내 마음은 마르지 아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