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죽음 이야기만 하다 끝난 견한잡록
칠순 팔순이 넘어가면 본능으로 죽음에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아직 그 나이는 아니지만 환갑 앞두고 벌써 내가 언제 훅 갈지 모르겠다는 상념을 떨칠 수가 없는데,
저런 노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더구나 평균수명이라 해 봐야 마흔도 되지 않았을 조선시대로 들어가서 본다면 어떻겠는가?
앞서 안경이 초래한 혁명을 이야기하면서 잠깐 조선 중기를 살다간 심수경沈守慶이라는 사람을 소개한 적이 있다.
1516년, 중종中宗 11년에 나서, 과거 급제하고는 출세가도를 달려 훗날 좌의정까지 역임하고는 장장 84세 장수를 누리다가 1599년, 선조 32년 눈을 감았다.
특히 말년에는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 난국을 만나서도 살아남았으니,
그러고도 천수를 누렸으니 이런 사람이 팔순에 접어들면서 어떤 생각들로 살았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의 저술 중에 일상생활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를 여가를 틈타 묶어 만든 아주 간단한 경수필집으로 견한잡록遣閑雜錄이라 제題한 것이 있으니,
이건 한국고전번역원에서도 전문 번역 서비스를 실시하니
혹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쯤 보셨으면 한다.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1323A_0010_000_0010
앉은 자리에서 한 시간이면 너끈히 독파하는 깐쫑한 분량이다.
아주 짧은 이야기 묶음집이라, 첨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다.
손가는대로 아무데나 읽기 시작해도 상관없다.
이 이야기들은 집록 시기가 차이를 보인다.
내가 지금 몇 살이다 하는 구절이 있는데, 그 나이가 각기 다른 것을 보면 각기 다른 시기에 짤막하게 정리한 것들을 훗날 한꺼번에 원고로 정리해 책으로 편철했다 보면 대과가 없다.
그 엮은 시기를
내가 신미년 가을부터 몸소 겪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연대에 따라서 기록한 것이 모두 몇 가지가 되는데, 그 이름을 《견한잡록》이라 하였다. 비록 여가를 보내는데 주를 두어서 쓸모없고 난잡하기는 하지만, 꼭 모두가 쓸데없고 무익한 말만은 아닐 것이니, 보는 이는 부디 비웃지 말았으면 한다. 만력 기해년 봄에 청천당(聽天堂)은 발문(跋文)을 쓴다.
고 했으니 칠십이 넘어서 쓴 것들이며,
그 최종 완성시기는 팔순이 넘어서라는 사실은 안다.
당시 팔순? 상노인이며 실은 산송장이나 다름 없다.
그래도 이 책을 완성할 때까지는 건강했던 듯, 이렇다 할 병마가 없다는 말을 자주한다.
그렇다고 그가 가까이 온 죽음을 몰랐겠는가?
이 견한잡록은 첨부터 끝까지 온통 나이 이야기이며, 친구들 중 난리통에 다 죽고 나만 혼자 남았느니, 나를 포함 셋만 남았느니 하는 이야기뿐이다.
그래서 지겹다고?
그래서 몹시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