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춘동의 도서문화와 세책

세책, 영화 《음란서생》을 만나다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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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춘동 선문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영화 음란서생 포스터



이번에는 《세책(貰冊) 고소설(古小說) 연구(硏究)》(혜안)라는 책 이야기를 좀 해 볼까 한다. 이 책이 선보인 시점은 16년 전인 2003년 9월. 이 블로그 공장장인 김태식 기자가 당시 그 출간 소식을 전한 기사가 있어 소개한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 세책(貰冊) 고소설 연구 = 이윤석·정명기 외 공저. 먼저 세책이란 용어가 궁금하다. 세책집이란 곳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빌려주는 책이 세책이다. 전문 책대여점에서 빌려주는 책인데 18~19세기에 유행했다.


·정조 때 인물들인 채제공과 이덕무가 남긴 글에는 "여자들이 일은 하지 않고 책만 빌려본다"는 등의 언급이 간혹 보이는데 세책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책에 대한 연구가 아직까지 활발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분야에 천착하면 그 시대상의 일단을 엿볼 수도 있다. 어떤 책을 어떤 사람들이 읽었느냐를 분석함으로써 그러한 궁금증이 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에 수록된 논문 중 이 분야 연구의 서장을 연 것으로 평가되는 일본 덴리대학 오타니 모리시게(大谷森繁) 교수는 초기 세책들과 19세기판 세책들인 이른바 "방각본" 소설의 독자층이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이윤석·정명기 교수 등은 세책으로서의 여러 춘향전 판본을 단락별로 비교하는 한편 삼국지연의금향정기처럼 중국에서 전래된 소설들이 국내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변모했는지를 살펴보았다. 혜안 刊. 400쪽. 2만2천원. 

taeshik@yna.co.kr 


2003.09.12. 08:01



음란한 한석규, 더 음란한 김민정




앞선 연재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책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나오기까지 오랜 내력과 연원(淵源), 그에 따른 사연을 지닌다. 


이 책 저자를 보면 이윤석, 오오타니 모리시게(大谷森繁), 그리고 정명기로 되어 있다.  책 날개를 보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저자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세 분만 표제에 실은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세책 연구에 기울인 오랜 노력을 기념하자는 공동 필자들이 이렇게 하자고 결정해서 그리된 것이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된다. 먼저 1부는 세책이 무엇인지를 다룬 오오타니 모리시게, 이윤석, 그리고 정명기의 글이다. 


2부는 세책 개별 작품을 이윤석, 정명기, 전상욱, 주형예, 김영희, 유춘동이 다루었다. 3부는 일본과 중국의 세책을 오오하시 타다요시(大橋正叔)와 이소베 아키라(磯部彰) 글로써 소개한다. 


이 책에서 의의가 큰 대목은 ‘세책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한 부분이다. 이전까지 세책에 대한 정의, 구체적인 특징을 상세하게 기술한 책은 없었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세책의 개념이 정의되고, 실물의 구체적인 특징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 책의 압권은 여러 곳에 실물로 남은 세책의 자세한 정보, 세책의 총량, 간단한 서지사항, 세책점 지도라 할 만하다. 이 목록 작성을 위해 필자들이 정말로 여러 곳으로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조선후기 한양 지역 세책점 지도




이 단행본이 세상에 나오자 이를 반긴 곳이 영화계였다. 2006년 제작되어 인기였던 《음란서생》 제작팀은 세책, 세책점과 관련해 영화 제작에 필요한 자문을 요청해왔다. 


물론 실제 영화에 드러난 세책과 세책점에는 일정 부분 소위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되었다. 이렇게 연구와 상상이 결합해 《음란서생》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영화 장면 설정에 나 개인으로서는 적잖은 불만은 있지만 이 영화는 세책의 존재를 대중에 널리 알린 호기였다.  



영화 음란서생



하지만 우리 연구팀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책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자 뜻밖의 일들이 터져나왔다.  


열심히 제작한 지도, 그리고 목록을 가져다가 버젓이 자신이 실제 연구한 결과물이라면서 내놓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른바 표절이 일어난 것이다.  


표절 문제가 공론화하면서 근자에만 해도 여러 사람이 표절을 했다 해서 곤욕을 치렀으며, 어떤 이는 자리를 떠나야 했다. 


굳이 이 자리에서 우리의 연구를 베껴먹은 사람들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들의 변명은 늘 한결같다는 말은 하고 싶다. 세상에 알려진 책을 활용해서 썼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이다. 


간곡히 부탁한다. 그래 당신들 말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 해도(물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적어도 어떤 책을 참고했고, 내가 그 책에서 더 나간 부분, 새로 보충한 부분을 언급하는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만 밝혀준대도 나는 학문 세계에서는 아무 원한도, 미움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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