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古의 일필휘지

황철黃鐵(1864~1930)의 글씨

taeshik.kim 2024. 2. 21.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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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번 야조冶祖 황철(黃鐵, 1864~1930)이란 이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아래 첨부 링크 참조)

그때 쓰기로, 개화기의 '풍운아'를 꼽으라면 포함될 만한 인물이라고 했더랬다.

그 삶의 궤적을 보나 남기고 간 작품을 보나, 그 평가는 지금도 유효하다.

거기 굳이 뭘 더 보태고 싶진 않지만, 기왕 쓴 김에 한 가지만 덧붙여본다.

황철은 만년엔 일본 친구 스나가 하지메(須永元, 1868~1942)에게 얹혀 살며 이따금 휘호揮毫를 하러 다닐 뿐이었다고 한다.

그의 글씨와 그림은 지금도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데, 특히 글씨는 살짝 끌린 기가 엿보일 정도로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행초行草가 대부분이다.

거칠고 호방하게 보이는 그의 글씨는 "구양순, 안진경을 배웠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전혀 다른데, 그 연원이 어디일까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지운영(池雲英, 1852~1935)에게 배웠다고 하는데 지운영의 작품보담도 훨씬 야취野趣가 강하다.

단순히 성격 차이는 아니지 싶고, 아무래도 당대 일본에서 유행하던 서풍書風을 어느 정도 수용한 결과 같은데 이는 서예사 하시는 분들의 연구를 기다려본다.

최근에 황철의 작품 하나를 볼 일이 있었다.

그 특유의 거침없는 행초 반절인데, 예쁜 글씨는 물론 아니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그런데 글쎄....

어딘지 모르게 바탕에 꽉 막혀 쌓여있는 듯한 느낌이 감돌았다.

'거침없다'고 하면 '막히지 않았다'는 말과 통해야 하는데 말이다.

꺾이고 멍들어 울울하게 뭉친 자기의 심사를 바탕에서나마 붓으로 풀어내려는 심산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시는 남송의 학자 주희(朱熹, 1130~1200)의 작품이라고 한다.



땅에 임하지 않은 초가 정자 草閣臨無地
텅 빈 강에 가을 달이 차갑다 江空秋月寒
기이한 절경임을 아는 데에 亦知奇絶景
남의 시선 따위 필요없도다 未必要人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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