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춘동의 도서문화와 세책

조선후기 세책貰冊 연구의 개척자, 오오타니 모리시게(大谷森繁)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 8.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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兪春東(鮮文大學校歷史文化Contents學科敎授)  



오오타니 모리시게(大谷森繁, 1932∼2015)



오오타니 모리시게(大谷森繁, 1932∼2015).  선생 또한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소설 연구에서 중요한 연구자로 평가받는 한 명이다. 선생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아래의 글을 인용하는 일로 대신한다. 



다카하시 토루[高橋亨]가 일본으로 귀환한 후, 텐리대학[天理大學]에서 길러낸 제자

다카하시의 조선 문학 연구를 전후(戰後) 일본에서 계승하고 있는 상징적인 인물

광복 이후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일본인 학자



국내에도 번역된 오오타니 모리시게 저서.



한국 고소설 연구에서 오오타니 모리시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독보적이다. 개중에서도 조선후기 소설독자(小說讀者) 연구와 조선후기 세책貰冊 재론(再論)은 압권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의 책 서론에서 밝혔듯이,  


“소설 연구는 작품과 작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소설의 사회적 역할은 독자를 통해서 비로소 구현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독자(독자층) 연구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라고 언급하면서, 조선후기 소설 독자를 규명해냈다.   


이 과정에서 탁월한 착안점은 우리에게 알려진 김시습, 허균과 같은 인물이 소설을 창작할 수 있었던 것은 실은 그들이 중요한 소설독자였기에 창작이 가능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여성독자 문제도 이 책에서 처음으로 실증적이면서도 심도 있게 다루어졌다고 할 만하다. 



동양문고 옛 건물







이후 소설과 관련한 출판문화 실태를 밝히는 작업을 통해 조선후기 세책본貰冊本과 방각본坊刻本의 역할, 그리고 그 보급 문제를 논의했다. 한국의 세책은 18세기에 나타나 19세기에 본격화하는데, 조선의 세책점은 조선만의 특징이 아니라 중국, 일본, 서양에서도 보편적인 현상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동양문고



그가 이런 세책본을 논하면서 주목한 자료는 일본 동양문고(東洋文庫) 소장 세책본들이었다. 이 책들은 오오타니 모리시게에 따르면, 1924년 한남서림(翰南書林)을 통해서 구입했다고 전한다. 한남서림은 백두용이 서울에서 운영한 출판사 겸 서점을 말하거니와, 현재도 인사동에서 운영 중인 통문관의 선구였다고 보아 대과가 없다. 


오오타니 모리시게가 동양문고에 세책본이 있고, 더구나 그들 자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한국 고소설 학계에 여러 번 알리기는 했지만, 이를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일본 동양문고 소장 세책본 홍길동전



이 책의 존재, 그리고 그 중요성을 오오타니 모리시게가 밝혀주고, 한국에도 전달한 것이다. 이에 힘입어 일반 필사본과 구분되는 세책의 외형적인 특징이 파악되었고, 이를 토대로 국내외 주요 대학과 기관에 소장된 세책 고소설이 발굴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세책 연구는 고소설 연구 판도에서 볼 때 신생(新生)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추동한 이 중에 오오타니 모리시게가 당당히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세책의 중요성과 존재는 지금보다 훨씬 뒤늦게야 알려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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