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춘동의 도서문화와 세책

"책 주인더러 욕을 아니하면 개자석놈이라"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 2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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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춘동 선문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兪春東 鮮文大學 歷史Contents學科 敎授



세책貰冊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 헌신적인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연구가 진행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통해서 이분들께 새삼 감사드린다. 이런 인연들을 기록으로나마 남겨 그 고마움을 새기고자 한다. 이번 글에서부터 이런 분들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석사과정 때 선생께 받은 금방울전 복사본



내가 세책을 실물로 처음 보기는 1999년 2학기 대학원 석사과정에서였다. 지도교수께서, 오오타니 선생님께 어렵게 건네받은 세책을 복사해 당시 수강 제자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셨다. 그때 필자가 받은 고소설이 《금방울전》이었다. 이 소설은 금방울의 활약과 나중에 인간으로, 여자로 변신하는 재미난 이야기책이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세책은 학계에서 연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를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고, 그랬기에 정말 시간 날 때마다 국내 도서관을 찾아 쏘다녔다. 혼자 갈 때가 많았지만 고인이 되신 정명기 선생과 함께할 때도 여러 번 있었다.


내가 처음 찾아낸 세책 모란정기



내가 처음 찾아 낸 세책은 《모란정기》였다. 수업을 듣고서 연세대 국학자료실로 찾아가 여러 자료를 꺼내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여러 날을 보다가 《모란정기》를 확인하면서, 이 책이 현재 을지로 부근에서 영업한 향목동(香木洞) 세책점에서 대여해주었던 것임을 확인했다.


모란정기에 적힌 책 주인을 향한 욕설




《모란정기》는 내가 아는 세책 중에서, 대여자들이 남긴 낙서가 많아 세책 대여 과정을 규명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담은 책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심지어 세책점 주인을 향한 욕까지 적혀 있었다. 


"책 주인더러 욕을 아니하면 개자석놈이라" 


이 자료를 발굴하면서 자료 발굴의 묘미와 재미를 알게 되고, 그래서 더욱 여러 곳을 쏘다니게 되었다.



모란정기에 적힌 책 주인을 향한 욕설




내가 찾은 곳은 국내 주요 기관이나 도서관이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은인을 만나게 된다. 그들 중에서도 지금까지 가장 고마운 사람, 현재의 필자가 있기까지 가장 감사한 사람은 이혜은 선생이다. 현재 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로 재직하지만, 내가 대학원생이었을 적에 선생은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과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혜은 선생



이혜은 선생은 ‘국외소재 한국 고문헌 수집과 정리’ 분야 최고 권위자 중 한 분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재직했을 때 주 업무는 역시 국외소재 전적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자료 구축이었다. 이 분이 이 업무를 도맡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해외에 있는 자료를 보기 위해, 개인적으로 사비를 들여가며 해외로 나가야만 했을 것이다. 


세책은 대다수를 국내가 아닌 일본, 영국, 미국, 러시아, 독일과 같은 해외 기관이나 대학에서 소장한다. 그 까닭은 1890년 조선의 개항과 더불어 많은 외국인이 방문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책’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수집해 간 열풍 때문이다. 개중에서 많은 사람이 세책점에서 세책을 구매해서 자국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이유로 해외 기관이나 대학에 유독 세책이 많다.



이혜은 선생




국내야 그렇다 치지만 개인이 국외로까지 나가서 조사를 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어려움을 알고, 당신이 조사를 나가면 나를 포함시켜 조사를 하면서 세책 여부를 알려주었으며, 국내 유관 기관인 국립중앙도서관,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같은 기관에 세책 발굴의 중요성 등을 심어준 덕에 정말 국·내외 세책 자료를 맘껏 보고 정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러시아 동방학연구소에서. 왼쪽에서 차례로 필자, 허경진, 트로체비치, 구리예바, 이혜은, 권진옥




그리고 이후에는 러시아 국립대학과 동방학연구소에서 영국 외교관 애스턴(W.G. Aston)이 조선에서 사간 조선의 다양한 전적, 세책을 확인하는 작업를 수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문헌정보학에서 축적된 비법(?) 등을 전수받게 되었다. (애스턴 관련 내용은 차후에 다룬다)



영국 외교관 애스턴(W. G. Aston)



이혜은 선생의 이런 전폭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세책 연구의 진전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생께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조사하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은혜 갚으러 가겠습니다."


선생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괜찮아요 선생님. 빈말하지 마시고, 선생님 공부 열심히 하세요."


더욱더 열심히 자료 찾고, 공부하는 것만이 고마움을 갚는 일이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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