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활자의 목적: 편한 교정을 생각해야

초야잠필 2024. 5. 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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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구텐베르크의 활자에 선동당하고 있기 때문에 활자인쇄는 대량생산이 목적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경우 활자의 역사가 유구하지만 정작 대량생산은 목판 몫이었다. 

활자는 몇 부 안 찍었다. 

앞서 이야기한 실록은 다해서 5부이니 교정쇄까지 해도 7-8부일 것이고 

우리가 편찬한 의방유취는 동양 최대 의학서라 무려 266권 264책으로 성종 때 활자로 인출했는데 딱 30부 찍었다. 

너무 방대한 책을 너무 적게 찍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모두 사라지고 일본이 임란 때 털어간 1부를 가지고 에도시대에 목판으로 찍어 보던 것을 한국에서 역수입한 것으로 안다. 

우리는 이렇게 적은 권수를 찍으려면 도대체 활자로 조판하는 품을 생각하면 차라리 필사하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겠다. 

그런데,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나라 활자의 목적은 대량생산이 아니고, 소량 다품종 생산이라는 특징이 있다고들 하지만, 

하나 더 장점이 있다. 

바로 쉬운 교정이다. 

필사를 했다고 쳐 보자. 교정을 하려면 필사한 복본 전부를 다 봐야 한다. 

엄밀히 이야기해서 필사본이란 책마다 별개의 책이기 때문이다. 

반면 목판은 인출하면 같은 책이 만들어지지만 문제는 한번 파고 나면 뜯어고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겠다. 

그래서 틀린 부분을 오려 내고 나무를 새로 새겨 박아 넣기도 했다지만, 이 점에 있어 활자는 탁월하다. 

예를 들어 10부를 찍는다고 하자. 

조판 한 후 한 장을 찍어 보고 틀린 것이 있으면 활자를 바꿔 끼운 후 다시 찍어 교정을 반복하며 더 이상 오탈자가 없을 때에 원하는 부수를 인출해 내고 판을 엎어버리면 된다. 

활자의 매력에 한 가지가 더 추가해야 되는 것이니-. 

바로 용이한 교정이다. 

이 때문에 겨우 10부를 찍더라도 우리 현명한 조상님들은 필사본 보다는 활자를 택한 것이다. 

수백년 전 사람들이라고 해서 돈을 모르고 계산도 안 되는 바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인쇄를 10부만 할 바에야 도대체 왜 활자를 쓰나? 

목판을 쓰거나 필사를 왜 하지 않았을까? 

그 양반들도 머리를 굴리고 편한 길 찾고 찾아 택한 방법이 바로 활자였다는 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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