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

2012년 용인 서봉사지 도굴미수 사건

서현99 2024. 4. 2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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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오랜만에 서봉사지 정비공사 현장에 다녀왔는데, 

12년간 추진한 발굴조사, 학술대회 등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에 하나가 '서봉사지 도굴미수 사건'이다.
 
 

2012년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모습, 당시 벌목 전이라 나무가 울창한 숲이었다.

 
2012년, 3년차 초짜 학예연구사 시절

그동안 용인시 문화재 관련해서 이렇다 할 정비사업이 없던 상황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이 광교산 아래 서봉사지였다.

이전에도 지표조사를 통해 서봉사 절터에 대해 인지되어 왔으나

종합정비계획이 세워져 있지 않았으므로,  당시에 종합정비계획 수립 용역을 추진 중이었다.
 
2012년 5월 18일 오후 4시 무렵, 서봉사지 종합정비계획 중간보고회에 앞서 사전 점검차 서봉사지에 출장갔다가,

전에 보지 못한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당시 도굴미수 현장 모습


현오국사탑비로부터 북쪽으로 약 40m 떨어져 있는 3단 석축 내 건물지 상부 아래가 파헤쳐져 있었고, 그 주변에서 도굴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장비와 물품을 발견하였다.

한쪽에 물품들을 숨겨두었던 모습



현장 상황으로 볼 때, 인적드문 산속에서 사람들 눈을 피해 조금씩 유구를 파헤친 것 같은데, 도굴품은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현장에서 물품을 수거 중인 당시 팀장님 모습


즉시 현장 사진 촬영과 발견된 장비, 물품을 수거하고, 문화재청, 관할 경찰서에 도굴사항에 대해 신고했다.

당시 보고자료에 작성했던 도굴 장비와 물품 현황을 옮기면,

○ 장비 및 물품현황
- 장비 : 7종 7개
호미 1개, 곡괭이 작은 것 1개, 톱 1개, 야전삽 1개,  쇠스랑 1개, 벤치 1개, 끌칼 1개,
- 물품 : 11종 20개
붓 1개, 시멘못3개, 줄자1개, 양초4개, 향 1개, 끈 1개(2m),  명반 의약품 1개, 목장갑 5켤레, 비닐하우스 1개(약4mx4m), 
얇은이불 1개, 비닐방석 1개
- 기 타 : 과자 1봉지(양파링), 음료수 종이컵 3개.
 

수거해오 물품들


명반은 아마도 뱀을 퇴치하기 위해 준비한 것으로 보이며, 얇은 이불과 양초가 있었던 것으로 봐서는 야간에 몰래 작업한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서봉사지를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자마자, 전체 사역 시굴조사, 1~4차 발굴조사를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숨도 쉬지 않고 몰아붙였다.

당시 너무 대범하게 발굴을 추진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 믿었다.


 
서봉사지 정비공사까지, 12년의 시간 동안 진짜 힘든 일도 많았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그렇지만 드디어 정비공사를 시작했으니, 이제 누가 뭐라고 해도 중단없이 진행될 거라 믿어 본다.

그리고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지만, 그동안 고생많았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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