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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품석8

김춘추의 여인들(3) 고타소 이 고타소(古陀炤)는 앞서 여러 번 다루었고,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이나 사건은 이곳 내 블로그에서 '고타소' 혹은 그의 남편 '품석'으로 검색하면 되거니와, 혹 그것들이 모두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바란다. 고타소란 이름은 내 조사가 철저한지 아닌지는 자신이 없거니와, 일단 내 추산대로라면 《삼국사기》 권 제41 열전 제1 김유신上에 보이거니와,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은 다음과 같다. 선덕대왕 11년 임인(642)에 백제가 대량주(大梁州)를 격파했을 때, 춘추공(春秋公)의 딸 고타소랑(古陀炤娘)이 남편 품석(品釋)을 따라 죽었다. 춘추가 이를 한스럽게 여겨 고구려에 청병함으로써 백제에 대한 원한을 갚으려 하자 왕이 허락했다. 이것이 삼국시대 말기, 삼국 관계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대량주, 곧 지금의 .. 2018. 10. 8.
룡석(龍石) 선덕왕 11년(642) 백제와의 대야성전투에서 끝까지 항거하다 전사한 신라인이다. 당시 관위가 사지(舍知)인 것으로 보아, 지방출신 하급 관리 혹은 군인이 아니었나 한다. 그의 공을 기려 대나마에 추증됐다.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선덕왕 : 11년(642)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에 백제 왕 의자(義慈)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나라 서쪽 40여 성을 쳐서 빼앗았다. 8월에 또 고구려와 함께 모의하여 당항성을 빼앗아 당나라와 통하는 길을 끊으려 하였으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 [당] 태종에게 위급함을 알렸다. 이 달에 백제 장군 윤충(允忠)이 군사를 이끌고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도독 이찬 품석(品釋)과 사지(舍知) 죽죽(竹竹)·용석(龍石) 등이 .. 2018. 3. 24.
서천(西川) 선덕왕 11년(642) 벌어진 백제와의 대야성 전투에서 대야성 도독 김품석 휘하 보좌관으로 백제군에 스스로 항복했다가 죽임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관위가 아찬이었다. 삼국사기 권 제47 (열전 제7) 죽죽 : 죽죽(竹竹)은 대야주 사람이다. 아버지 학열(郝熱)은 찬간(撰干)이 되었다. 죽죽은 선덕왕 때 사지(舍知)가 되어 대야성도독 김품석(金品釋) 휘하에서 보좌역을 맡고 있었다. 왕 11년 임인(백제 의자왕 2: 642) 가을 8월에 백제 장군 윤충(允忠)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그 성을 공격했다. 이보다 앞서 도독 품석이 막객(幕客)인 사지(舍知) 검일(黔日)의 아내가 예뻐 이를 빼앗았으므로 검일이 한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이때에 이르러 백제군과 내응해 그 창고를 불태웠으므로 성중 사람들이 두려.. 2018. 3. 24.
모척(毛尺) 본래 신라 사람이나, 642년 대야성 전투 때 신라를 배반하고 검일과 더불어 백제와 내통해 성이 백제에 함락되도록 하고, 아울러 이때문에 대야성주 김품석 부부를 죽임에 이르게 했다.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한 백제 정벌 때 신라군에 잡혀 처형됐다. 그의 가족들은 절 노비로 적몰되었다.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본기 : 7년(660)…8월 2일에 주연을 크게 베풀고 장병들을 위로했다. 왕과 정방(定方) 및 여러 장수가 대청마루 위에 앉고, 의자왕과 그 아들 융(隆)은 마루 아래 앉혀서 때로 의자왕한테 술을 따르게 하니 백제의 좌평 등 여러 신하로 목메어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날 모척(毛尺)을 붙잡아 목 베었다. 모척은 본래 신라 사람으로 백제로 도망한 자인데, 대야성의 검일(黔日.. 2018. 3. 23.
고타소(古陀炤) 훗날 태종무열왕이 된 신라 김춘추 딸이다. 대야성 군주로 임명된 남편 김품석을 따라 임지에 있다가 백제군에 성이 함락될 때 피살됐다. 삼국사기 권 제41(열전 제1) 김유신上 : 선덕대왕 11년 임인(642)에 백제가 대량주(大梁州)를 격파했을 때, 춘추공(春秋公)의 딸 고타소랑(古陀炤娘)이 남편 품석(品釋)을 따라 죽었다. 춘추가 이를 한스럽게 여겨 고구려에 청병함으로써 백제의 원한을 갚으려 하자 왕이 허락했다. (춘추가) 막 떠나려 할 때 유신에게 말했다. “나는 공과 한 몸이고 나라의 팔다리입니다. 지금 내가 만약 저 곳에 들어가 해를 당하면, 공은 무심할 수 있겠습니까?” 유신이 말했다. “공이 만일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 말발굽이 반드시 고구려·백제 두 임금의 뜰을 짓밟을 것이오. 진실로 그.. 2018. 3. 21.
고타소랑(古陀炤娘) 고타소(古陀炤)라는 여자를 높여 일컫는 말인 듯 ☞고타소(古陀炤) 2018.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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