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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산리사지6

도난 당한 백제 창왕시대 사리장엄을 복원한다 이것도 일전에 한 얘기지만, 건디기가 사라졌다 해서 학계가 그 껍대기만 남았다 해서 포기해 버린 대표 유물이라, 그 방기한 자리에다가 우리는 무엇을 가져다 채워야 하는가? 우리가 채워야 할 것은 저 속물이라, 위선爲先, 그 모양이 우체통이라 이것이 무엇을 말함인지를 궁구해야 했으니, 그것이 바로 동시대 목관임을 하시何時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속알맹이는 어느 시점인지 도굴꾼이 쏙 빼어갔으니, 그럼에도 우리는 저 외양이 무엇을 말함인지를 물었어야 하며, 거기에서 바로 우리가 채워야 할 것을 찾지만, 아무도 묻지 아니했다. 왜? 이 친구들은 밥술에 밥을 떠서 먹여줘야 하니깐 말이다. 왜 묻지 아니했으며, 왜 답을 찾지 못했는가? 그들은 탑파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다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탑파란 .. 2023. 5. 7.
능산리 절에는 백제 공방이 있었을까? 능산리 사지 발굴 도면이다. 노란색이 1993년 발굴 지역이라 이른바 서회랑이라 지목한 곳이다. 서회랑 북쪽에 남북 방향으로 길쭉한 건물지가 보이거니와 길이 방향으로 건물을 3구획했다. 이를 공방지라 했거니와 나는 믿을수 없다. 이에 대해선 추후 과제로 미루거니와 상식을 파괴한 주장이다. 집 안채에다가 공방을 만들 순 없다. 의심하라! (2017. 4. 16) *** 물론 저곳이 공방이었을 가능성을 받침하는 발굴성과가 있다. 그렇다 해서 검댕이 나는 공방을 것도 금당 바로 옆에다 차리고 불때고 녹이고 해서 쿵쾅쿵쾅 기물 만들었다고? 기물 보관창고라면 이해하겠다. 삼국시대 이래 사찰이 각종 공장 기능도 아울러 수행했다 하지만 검댕이 날리는 공방은 그 권역 외곽 후미진 곳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의심한.. 2023. 4. 16.
[무령왕릉과 쌍릉 사이, 백제 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우체통을 닮은 능산리 사리감舍利龕 얼마 전 국립부여박물관을 가서 보니 저 배치가 조금 바뀌어 이른바 백제금동대향로는 이 박물관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라 해서 상설전시실 가장 후미진 데 독립하고 고립한 안방을 차지한 데 견주어 저 사리감은 꼭 문지기처럼 그 전면에서 자리를 차지한다. 따라서 존재감은 말할 것도 없이 향로에 견주어 훨씬 미약해 그 모습을 보노라면 묘한 감정이 일기도 하니, 유물 역시 금칠을 해야 빛이 더 나는 법이며, 화강암 돌덩이는 제아무리 잘 갈아 만든다 해도 금덩이 견주어서는 빛이 덜 날 수밖에 없다 하겠다. 사비시대 백제유산을 대표하는 저 둘은 이전에는 저런 식으로 서로 마주보게, 그리고 그 간극에는 현재와 같은 그 어떠한 가림 장치가 없이 마치 세트를 방불하게끔 배치했지만, 그것이 출토한 지점이 같은 부여 능산리 절터이.. 2023. 4. 12.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한 벌판, 부여 능산리 절터의 경우 부여 능산리 절터 발굴조사 완료 이후 지금 풍광이다. 정비...이게 정답일까? 이걸 찍은 날이 8월 중순 폭염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폭염에 저기 들어가볼 엄두도 못낸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저런 정비 방식, 이제는 혁파해야 하지 않을까? 의자 하나 없다. 어디서 뭘 하란 건지 대체 알 수가 없다. 음수대 하나도 없다. 들어가서 통닥구이 되란 뜻이다. 모든 문화재 정비 현장이 이 꼴이다. 백제시대에 저랬을 거 같나? (2016. 9. 4) **** 우리 문화재 현장은 너무나 보수적이라, 그 근거도 없고 역사적 유래도 없으며, 철학적 고민이라고는 전연 그리고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는 관습이 인습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으니, 요새야 조금은 바뀌기는 했다손 하지만, 매양 모든 고고학 발굴현장이 저런 양태라, 이럴.. 2021. 9. 4.
해직이 낳은 두번째 책 《능산리》 참으로 빈깡통처럼 소리만 요란한 졸저 《부여 능산리 고분·사지, 지난 100년의 일기》가 출간되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 책은 부여군이 지원하고, 그 산하 백제고도문화재단 사비도성연구단이 진행한 학술지원 사업인 까닭에 저는 돈만 먹고 저작권 일체가 부여군으로 넘어간 데다, 보다시피 《부여 능산리고분군 조사기록화사업》 전5권 한 질 세트 중 하나로 들어간 까닭에 저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비매품이요 기관 배포용인 까닭에 저자 중 한 명인 저한테도 여유분이 전연 없습니다. 몰래 제가 찍어 돌리는 방법이 있긴 할 텐데 복직이 예정된 마당에 그리할 수도 없습니다. 신세진 제현과 항상 저를 응원하시는 분들께는 미력하나마 감사의 표시로 썼으면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음을 혜량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 시.. 2020. 7. 12.
사진으로 보는 부여 능산리 유적 몇 장면 능산리사지陵山里寺址 사역寺域 발굴상황을 논할 때 항용 인용하는 국립부여박물관 사진이다. 부여박물관이 펴낸 발굴보고서에도 그대로 수록됐다. 이거 합성이다. 능산리사지가 이렇게 한꺼번에 노출된 적은 없다. 하지만 이 장면이 합성이란 사실은 보고서 어디에도 없다. 자칫 역사 조작 논란을 부를 만한 사안이다. 합성임을 밝혔어야 한다. 포샵은 비밀을 폭로한다. 널리 알려진 능산리사지 백제금동대향로 출토 장면이다. 여러가지 방식으로 노출 등을 조정해보니 야간 발굴이었음이 더욱 명백해진다. 후래시를 썼던 것이다. 금동대향로는 한밤중에, 그것도 한겨울에 물이 나는 땅을 맨손으로 헤집고 발굴하고 사진 촬영을 했다. 이 사진은 지금은 세종문화재연구원 실장으로 있는 진성섭이 했으며, 실제 맨손 발굴은 조사연구단장 at 서라.. 2019.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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