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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퇴14

마왕퇴 (16): 관속의 액체 마왕퇴 발굴 당시 관련자들의 주목을 끈것은 관속의 액체였다. 마왕퇴는 전한 제후왕의 예에 따라 여러 겹 관곽이 포개져 있었는데 마지막 관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상당량의 액체가 바닥에 차 있었고 썩지 않은 유물은 바로 그 액체속에 잠겨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마왕퇴 무덤이 처음 열렸을 당시 하나도 썩지 않은 시신과 유물을 보고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이 무덤은 부패하지 않도록 인공적으로 처리된 것이라 보았다. 시신을 부패하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원망은 사실 한대에 전혀 없던 것도 아니었고 그 시대에 시도했던 여러가지 방법 중 하나가 마침내 성공을 거두어 시신과 유물이 잘 남았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관을 열었을 떄 유물은 물론 시신까지 완벽하게 남은 것을 보고 당시 발굴에 참여한 사.. 2023. 11. 1.
마왕퇴 (9): 방부처리 중인 미라 보자 몰려든 수십만 군중 마왕퇴 시신은 원래 이를 보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었지만, 결국 이를 방부처리키로 했다. 방부처리는 해부용 시신이나 좀 얻어볼까 하고 찾은 호남의학원 해부학교수들을 잡아 놓고 이들에게 협박 반 사정 반으로 제발 도와달라 해서 이루어졌다. 사실 해부학교수들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의학교육용 시신에 대한 방부처리를 하는 방식대로만 처리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방부처리용으로 알코올과 포르말린 혼합액을 주입했다고 되어있는데, 대개 혈관에 방부액을 흘려 보내면 이 방부액이 몸 안 곳곳에 퍼져 있는 모세혈관까지 따라가며 시신을 더 썩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마왕퇴 미라의 경우도 같은 방식으로 혈관 속에 방부액을 흘려 보냈던 모양인데 아마도 큰 혈관은 흘러 지나갔겠지만 소혈관 이하.. 2023. 10. 29.
마왕퇴 (8): 만병통치약 마왕퇴 기록을 보면 중국 대중은 조용한가 싶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몰려들어 쑥밭을 만들어 놓고 떠나가는 존재로 나온다. 이 당시가 문화혁명 절정기였던 탓도 있고, 뭐 솔직히 있는 그대로 쓰자면 중국민중의 당시 민도 탓도 크다. 마왕퇴 무덤은 가장 안에 목곽이 놓이고 그 밖에 숯을 채우고 다시 그 바깥쪽을 고령토로 다져 밀봉한 다음 위에 흙을 다져 쌓아 올려 만들어졌다. 이 무덤을 발굴했을 때 목곽주변에 쌓아 둔 막대한 양의 숯이 나왔는데, 너무 많은 양이 나와 이 숯은 박물관 창고에도 넣지 못하고 마당에 자리를 깔고 그 위에 쌓아 두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숯을 사람들이 광주리를 들고와 퍼가는 것이 아닌가! 왜 그런지 이유를 들어보니 마왕퇴 무덤에서 나온 이 숯이 사람들 병을 낫게 해준다는 소문이 돌고 .. 2023. 10. 28.
마왕퇴의 귀부인 책 소개 <발굴기로 만난 중국 마왕퇴 유적>(2001) 2001.03.15 16:07:18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971년 여름 백제의 고도 충남 공주에서 실로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으로 한국 사회는 온통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27일 양쯔강 남쪽 중국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라는 곳에서는 세계를 뒤흔든 발굴이 테이프를 끊고 있었다. 당시 중국 사회는 문화대혁명과 소련과의 극한 대립이라는 두 가지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었다. 소련과는 전쟁까지 벌일 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한 가운데 군(軍)에는 소련의 원자탄 공격에 대비해 참호를 파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이에 따라 해방군 366병원은 일단 유사시를 대비해 마왕퇴(馬王堆)라 일컫는 잡초 무성한 언덕에 방공호를 파내려 가기 시작했다. 10m가량 굴을 파고 내려가.. 2023. 10. 24.
마왕퇴 (2): 마왕퇴 발굴을 보는 시각 웨난岳南 책은 대중서이지만 마왕퇴 개설서 삼아 읽기도 좋다. 마왕퇴 고분이 발견되었을 때부터 박물관에 전시될 때까지 전 과정을 가감없이 시간순으로 적어놨기 때문이다. 岳南은 인민해방군 출신 경력이 그의 글에 독특한 시각을 부여했다고 보는데 비교적 개혁개방이후 중국 정부 시각을 고고학 발굴에 충실히 투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왕퇴 무덤의 경우 발견 당시부터 조사가 끝날 때까지 과정을 岳南은 일관되게 사인방으로 대표되는 문화혁명 도당 일파와 이에 맞서는 합리적 간부들의 싸움으로 묘사하는데 후자는 발굴 현장에서 땅을 파고 있는 고고학자들과 위로는 주은래, 곽말약이 속하는데 이들은 마왕퇴 발굴과 조사를 부단히 훼손하려는 사인방의 획책에 묘안을 짜내어 필사적으로 막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마왕퇴 발굴과 조사가.. 2023. 10. 24.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4) 마왕퇴에서 생각한 위만의 무덤 2006년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봉직하던 최몽룡에게는 회갑인 해였다. 그는 본교 제자도 많았지만, 고고학 전담 교수가 없는 다른 대학에서도 지도한 외곽 제자도 만만치 않았으니, 백제를 필두로 하는 역사 전문 출판사인 도서출판 주류성 사장 최병식도 그런 사람에 해당한다. 백제에 미쳐, 특히나 그 마지막 왕 의자의 신이 강림했다고 믿는 최병식은 형제들이 모두 박사학위가 있는데 장남인 자신만은 없다는 점을 못내 한스러워해 50대 늦깎기로 두 대학에 석박사로 등록해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이 과정에서 불과 5살 정도 많을 뿐인 최몽룡의 제자 그룹에 들어간다. 최몽룡이 환갑을 맞은 그해 9월, 최병식은 선생의 환갑 선물로 중국 여행을 준비한다. 기간은 대략 4박5일 정도 되었다고 기억하.. 2023.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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