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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7

해남 일평리토성 by 이정호 해남 일평리토성으로 알려진 곳. 80년대에 가야토기 여러 점이 드러나 인근 초등학교에 보관되고 있다. 경작 때문에 지형이 많이 깎여서 토성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나, 토성 아래 경사지에 네 기둥 구조 마한계 집자리가 가득하다. 비록 온전한 집자리가 없어 아쉽지만, 쇠를 다루었던 슬러지(쇳물찌꺼기), 현지산이 아닌 특이한 백색토기가 보여 눈길을 끈다. 인근에는 고인돌, 고분, 성곽이 빼곡하다. 현산, 고현이라는 지명을 남겼듯이 이곳은 조선 초기까지 해남 소재지였다. *** 이상 동신대 이정호 교수 전언인데 정확한 조사상황은 자료 입수하는 대로 정리하기로 한다. 2023. 4. 17.
해남 방산리 독수리봉고분군 발굴조사 요약 정리 다음은 이 발굴을 담당한 마한문화재연구원(원장 조근우)이 이번 조사 성과를 일목요연히 정리한 것으로 이해를 좀 더 쉽게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해서 전문을 소개한다. 더보기 해남 방산리 독수리봉고분군 발굴조사 2023. 03 전라남도·해남군·마한문화재연구원 Ⅰ. 조사개요 - 조사명 : 해남 방산리 독수리봉 고분군 발굴조사(허가 제2022-698호) - 조사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방산리 산67 일원(720㎡) - 조사경과 · 1986. 목포대학교박물관 최초보고 · 2000. 전남대학교박물관 측량조사 실시 · 2001. 국립광주박물관 지표조사 실시 · 2001. 9. 전라남도 문화재자료(제233호) 지정 · 2022. 6. 시굴조사 실시 · 2023. 1. 정밀발굴조사 실시 - 발굴조사 : 2023.. 2023. 3. 27.
땅끝마을 탐진만을 조망한 4세기 해양 기반 유력 가문이 남긴 무덤 해남 독수리봉 고분 주인은…"고대 바닷길 마한 수장" 북일문화권 마한시기 유적 첫 확인…현장자문회의 개최 (해남=연합뉴스) 조근영 기자 = 전남 해남군 북일면 방산리 독수리봉 고분군이 철기유물을 품은 4세기대 마한 수장의 무덤으로 밝혀졌다. 해남군은 24일 '해남 방산리 독수리봉고분군(전라남도 문화재자료 233호)' 발굴조사 현장자문위원회를 개최하고 지난 4개월여간의 조사 성과를 공개했다.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64597193866 해남 독수리봉 고분 주인은…"고대 바닷길 마한 수장" (해남=연합뉴스) 조근영 기자 = 전남 해남군 북일면 방산리 독수리봉 고분군이 철기유물을 품은 4세기대 마한 수장의 무덤으로 밝혀졌다. 해남군은 24일 ′.. 2023. 3. 25.
[경기도박물관 특별전]경기, 마한.백제 특별전 이번주 개최한 경기도박물관 특별전은 마한 및 한성백제 등과 관련된 최신 출토유물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로, 경기도박물관과 한국문화유산협회가 공동 주최하여 8월 10일부터 10월 31일까지 열린다고 합니다. 마침 올해 우리팀에 합류한 새내기 학예사 2명 모두 마한 관련 전공자이기도 하고, 용인 고림동에서 발굴된 유적 유물도 전시된다고 해서, 우리팀 4명의 학예사가 총 출동하여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 용인, 가평, 화성, 광주, 오산, 평택 등 경기지역 일대에서 발굴된 유적 설명과 대표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한국문화유산협회와 공동으로 주최해서 그런지, 패널과 유물 네임택에 각 유적의 조사기관이 어디인지 알려주고 있어 나름 새로웠습니당 ㅎㅎㅎ 전시는 경기도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사전예약제로 관람 가능하며, 오는.. 2021. 8. 12.
호공瓠公 ?~?. 신라 초기 때 대보까지 역임한 정치가로 왜인 출신이다. 주된 활동시기는 박혁거세 이래 탈해니사금 시대에 걸친다. 왜인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에 정착할 때 허리에 박을 차고 왔으므로 이런 이름을 얻었다. 양산 아래 좋은 땅에 살다가 탈해한테 그 땅을 빼앗기니, 이곳이 나중에 월성이 되었다. 삼국사기 권 제1(신라본기 제1) 박혁거세 : 38년(서기전 20) 봄 2월에 호공(瓠公)을 마한(馬韓)에 보내 예방禮訪했다. 마한왕이 호공을 꾸짖어 말하기를 "진한과 변한 두 나라는 우리의 속국인데 근년에 공물(貢物)을 보내지 않으니, 큰 나라를 섬기는 예의가 이와 같은가?" 하니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는 두 성인이 일어나서부터 인사(人事)가 잘 다스려지고 천시(天時)가 순조로와, 창고는 가득 차고 백성은 공경.. 2019. 7. 1.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 5편 기자조선과 백제, 그 괴이한 조우 “미륵사 석탑은 백성의 고혈 짜낸 죄악” 注) 이는 문화유산신문 기고문으로 기사입력시간은 2016년03월09일 13시55분이다. 《삼국유사》는 승려 일연이 대부분 찬술한 가운데 그 일부는 그의 제자 무극(無極)이라는 승려가 보충했다는 주장이 이제는 적어도 학계에서는 대세를 이룬다.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도 군데군데 있다. 특히 그 맨 앞에 붙은 가야를 포함한 네 나라 왕들과 후삼국 왕들의 계보인 왕력(王曆)이 그 이하 본문과는 어떤 관계인지는 적지 않은 논란이 있다. 지금 살피고자 하는 백제 무왕(武王) 역시 그러하다. 이곳 왕력 편에서는 백제 제30대 왕인 그를 일러 “무강(武康)이라고도 하는데 헌병(獻丙)이라고도 한다. 혹은 어릴 때 이름을 일로사덕(一耆篩德)이라고도 한다. 경신년(600)에 즉위해 41년을 다스렸다”고 했다... 2018.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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