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명농왕4

바로 죽으면 태평성대, 백제 혜왕은 산송장? 혜왕 때는 별 일이 없으셨던가 ***Editor's Note *** 백제 28대 혜왕惠王에 대한 삼국사기 백제본기 기술은 딱 저게 다다. 惠王諱季, 明王第二子, 昌王薨即位 二年王薨, 諡曰惠 혜왕은 이름이 계季다. 명왕(명농왕, 성왕) 둘째아들이다. 창왕이 훙하자 즉위했다. 2년, 왕이 훙하니 시호를 혜라 했다. 혜왕은 누구다. 이듬해 죽었다. 끝! 바로 죽으면 태평성대다. 왜? 적을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27대 위덕왕威德王, 생전에는 창왕昌王으로 일컫던 이의 동생으로 왕위를 이었으니 그 형 재위 기간이 554~598년으로 거의 반세기에 달함을 볼 때, 즉위 당시에 이미 고령이었을 것이다. 백제로서는 산송장을 갖다 놓은 셈인데, 옹립 냄새가 난다. 옹립이란 꿔다논 보릿자루라는 뜻이다. 2023. 9. 13.
죽어도 노비 손에는 죽을 수 없다는 백제 명농왕明穠王 일본서기 흠명 15년 조에는 유명한 성왕이 승하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왕이 아들 위덕왕을 찾아 가다 매복에 걸려 죽는 장면이다. 여기에는 의미심장한 부분이 두 군데 있다. 1. 고도가 말하기를 "우리나라 법에는 맹약을 어기면 비록 국왕이라 할지라도..."라는 부분이 있다. 성왕이 맹약을 어겼다는 뜻일 터다. 무슨 맹약일까? 이미 앞에 한 번 쓴 바 있다. 백제는 신라와 공수동맹을 맺었지만 가야방면으로는 끊임없이 가야와 연계하여 신라를 견제하려 했다. 우리가 모르는 적대행위가 또 있었을 수 있다. 아무튼 문맥으로 보면, 적어도 신라로 보면 한강 탈취 명분은 "백제가 맹약을 어겼기 때문"인 셈이다. 그 명분 역시 모든 정치판 명분이 그러하듯 구실에 불과했겠지만. 2. 고도가 명왕을 사로잡아 "왕의 머리를 베.. 2022. 12. 15.
도도(都刀) 신라 진흥왕 15년(553) 백제와의 관산성 전투에 김무력이 이끄는 신라군 휘하에 소속되어 출전한 삼년산군 고간으로, 백제 성왕을 사로잡아 처형하는 전과를 올렸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4 진흥왕 : 15년(553) 가을 7월에…백제왕 명농[성왕]이 가량(加良)과 함께 관산성(管山城)을 공격해 왔다. 군주 각간 우덕(于德)과 이찬 탐지(耽知) 등이 맞서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했다. 신주(新州) 군주(軍主) 김무력(金武力)이 주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교전함에 비장(裨將)인 삼년산군(三年山郡) 고간(高干) 도도(都刀)가 급히 쳐서 백제 왕을 죽였다. 이에 모든 군사가 승세를 타고 크게 이겨 좌평(佐平) 네 명과 군사 2만 9천6백 명을 목베니 한 마리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2018. 6. 12.
명농(明襛) 백제 제26대 성왕 이름이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성왕 : 성왕(聖王)은 이름이 명농(明襛이고 무령왕 아들이다. 지혜와 식견이 빼어나고 일을 잘 결단했다. 무령이 죽자 왕위를 이었는데 국인들이 일컬어 성왕이라 했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26대 성왕(聖王)은 이름이 명농(明穠이다. 호녕왕(虎寧王) 아들이다. 계사년에 즉위해 31년을 다스렸다. 무오년에 도읍을 사비(泗泚로 옮겼고 (국호를) 남부여(南扶余)라고 일컬었다. ☞성왕(聖王) 2018. 3. 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