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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서원2

신주단지가 된 최치원, 정읍 무성서원井邑武城書院 최치원을 정말로 신주단지로 모신다는 정읍 무성서원井邑武城書院을 찾은 때는 봄날이었음에도, 한여름 같은 날이라, 나른함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이 그림 같은 풍광 저편 어딘가에 무성서원이 똬리를 튼다. 지금은 풍광이 사뭇 변해 지금은 동네사람들 휴게하는 자리, 혹은 버스 휴게실 정도겠거니와, 저곳에 벌러덩 자빠졌다. 이 일대가 그 옛날에 녹록치 않은 지위를 차지했음을 보여주는 안내판이라랄까? 주변으로 저런 석불입상과 삼층석탑이 있다는 사실은 현장 방문을 통해 비로소 알았으니, 결국 무성서원 다음으로 저들을 찾아 나섰다. 무성武城은 이 일대를 지칭하는 이전 지명이라, 그러고 보니, 중앙 정계를 떠난 치원 公이 이곳 태수인가를 지냈다는 흔적을 어딘가에선 본 적 있는 듯하거니와 실상이 어떻든, 그는 조선 유학의 .. 2019. 5. 4.
가사문학의 개창조, 정읍 불우헌 정극인 묘소 무성서원서 오백미터 지점에 무성리 삼층석탑이 있고, 그걸 지나 농토 한가운데로 난 아스팔트 왕복 일차선을 따라 얕은 능선을 오르면 불후헌 정극인 묘소가 있다. 문중에서 세웠는지, 아니면 지자체 작품이는 지모르겠지만, 안내판이 있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우헌 정극인不憂軒丁克仁 선생 본관은 영광(靈光). 자字는 가택(可宅), 호는 불우헌(不憂軒) , 다현(茶軒) . 다각(茶角)이고, 1401년(태종1) 경기도 광주(廣州) 두모포豆毛浦에서 출생하였고, 1429년(세종11) 생원시에 급제, 성균관에서 수학 중 1437년(세종 19) 척불斥佛상소로 인해 북방(北方)으로 귀양을 갔다가 곧 풀려 처가가 있는 태인(泰仁)으로 닉향하었다. 서당을 세워 항리자제鄕里于弟)를 가르치면 중 1451년(문종 1) 일민 천거.. 2019.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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