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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왕9

고장왕(高藏王) 고구려 마지막 제28대 왕인 보장왕(寶臧王·재위 642~668)을 다르게 일컫는 이름. 고구려 왕족 성이 高씨이기 때문에 고장왕이라 칭한 것이다. 삼국사기 권제5(신라본기 제5) 선덕왕 : 11년(642)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에 백제 왕 의자(義慈)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나라 서쪽 40여 성을 쳐서 빼앗았다. 8월에 또 고구려와 함께 모의하여 당항성을 빼앗아 당나라와 통하는 길을 끊으려 하였으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 [당] 태종에게 위급함을 알렸다. 이 달에 백제 장군 윤충(允忠)이 군사를 이끌고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도독 이찬 품석(品釋)과 사지(舍知) 죽죽(竹竹)·용석(龍石) 등이 죽었다. 겨울에 왕이 장차 백제를 쳐서 대야성에서의 싸움을 보복.. 2018. 3. 19.
고문(高文)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下 : 7년(648) 9월에 노루 떼가 강을 건너 서쪽으로 달아나고 이리 떼가 서쪽으로 갔는데, 3일 동안 끊이지 않았다. 태종이 장군 설만철 등을 보내 와서 침공하게 하였는데, [그들은] 바다를 건너 압록강으로 들어와 박작성(泊灼城) 남쪽 40리 되는 곳에 이르러 군영을 쳤다. 박작성주 소부손(所夫孫)은 보병과 기병 1만여 명을 거느리고 막았으나, [설]만철이 우위장군 배행방을 보내 보병과 여러 군대를 거느리고 쳐서 이기니, 우리 군사들이 무너졌다. [배]행방 등이 군사를 내보내어 포위하였으나, 박작성은 산에 의지하여 요해처를 세우고 압록수로 굳게 막혔으므로,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우리 장수 고문(高文)은 오골(烏骨), 안지(安地) 등 여러 성.. 2018. 2. 23.
고임무(高任武)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下 : 6년(647) 겨울 12월에 왕은 둘째아들 막리지 임무(任武)를 당에 들어가 사죄하게 하니, 황제가 이것을 허락하였다. 2018. 2. 23.
임무(任武) ☞고임무(高任武) 2018. 2. 23.
고덕무(高德武)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 수공(垂拱) 2년(686)에 [황제가] 항복한 왕의 손자 보원(寶元)을 조선군왕(朝鮮郡王)으로 삼고, 성력(聖曆) 초년(698)에 이르러 좌응양위(左鷹揚衛) 대장군으로 올렸다가 다시 충성국왕(忠誠國王)으로 봉하고, 안동의 옛 부를 통치하게 하였으나 [그는] 가지 않았다. 이듬해에 항복한 왕의 아들 덕무(德武)를 안동도독으로 삼았는데, 후에 점차 나라를 이루었다. 원화(元和) 13년(818)에 이르러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악공(樂工)을 바쳤다. 2018. 2. 23.
고보원(高寶元)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 수공(垂拱) 2년(686)에 [황제가] 항복한 왕의 손자 보원(寶元)을 조선군왕(朝鮮郡王)으로 삼고, 성력(聖曆) 초년(698)에 이르러 좌응양위(左鷹揚衛) 대장군으로 올렸다가 다시 충성국왕(忠誠國王)으로 봉하고, 안동의 옛 부를 통치하게 하였으나 [그는] 가지 않았다. 이듬해에 항복한 왕의 아들 덕무(德武)를 안동도독으로 삼았는데, 후에 점차 나라를 이루었다. 원화(元和) 13년(818)에 이르러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악공(樂工)을 바쳤다. 2018.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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