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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36

늦여름 더위 한시, 계절의 노래(143) 늦여름 즉흥시(季夏卽事) 송 조보지(晁補之) / 김영문 選譯評 붉은 접시꽃 비를 맞아꽃대 길게 자라고 푸른 대추 바람 없어도가지 무겁게 누르네 주춧돌 축축하니사람도 땀에 젖고 찌는 숲 속 매미들뜨겁게 울어대네 紅葵有雨長穗, 靑棗無風壓枝. 濕礎人沾汗際, 蒸林蟬烈號時. 늦여름 찌는 듯한 더위를 읊은 6언절구다. 이 시만 읽고 있어도 온몸에 곧바로 땀이 솟아오를 듯하다. 무덥고 습기 찬 늦더위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대학에서 중국문학사를 강의할 때 이 시의 작자가 활약하는 북송 시기에 이르면 매우 곤혹스러웠다. 이 작자의 우리말 발음 때문이다. ‘조보지(晁補之)’는 황정견(黃庭堅), 장뢰(張耒), 진관(秦觀)과 함께 소문사학사(蘇門四學士)에 속하므로 언급하지 않을 수도 없다. 소문사.. 2018. 8. 16.
매미 울어대는 계곡에서 한시, 계절의 노래(136) 저녁에 시내에서 목욕하다(晚浴溪上) 송 왕염(王炎) / 김영문 選譯評 산발치엔 풀 우거져나무꾼 길 덮였고 시내엔 물이 줄어돌다리 높아졌네 강 위의 바람 이슬독점하는 사람 없고 버들 고목 검은 매미곳곳에서 울어대네 山脚草深樵徑沒, 溪頭水落石梁高. 一川風露無人占, 古柳玄蟬處處號. 시인은 산발치 맑은 시내에 몸을 담그고 있다. 무더운 여름 저녁 시원한 시냇물에 몸을 담그면 온몸으로 스며드는 청량감에 내 몸에 쌓인 열기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더운 여름에 차가운 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죽음과 같을 것이다. 요즘 도시에서는 대개 샤워로 몸의 열기를 식히지만 옛날 시골에서는 등목으로 여름을 견뎠다. 뜨거운 땡볕에서 밭일을 하다 돌아와 방금 길어낸 우물물로 등목을 하면 뼛속까지 냉.. 2018. 8. 8.
물위를 뛰어오르는 은빛 물고기 한시, 계절의 노래(114) 남계에서 저녁 무렵 강물을 구경하다(南溪薄晚觀水) 송 양만리(楊萬里) / 김영문 選譯評 그 누가 모래 자갈로비스듬히 제방 쌓았나 세찬 물결 제방 부딪쳐절로 모래둑 터졌네 작은 물고기 무수히어지럽게 뛰어 오르고 유리판 아래에서은빛 꽃처럼 까부네 誰將沙礫壅堤斜, 水怒衝堤自決沙. 無數小魚齊亂跳, 琉璃盤底簸銀花. 장마철에 큰물이 지면 강물 흐름에 따라 저절로 모래와 자갈이 모여 둑이나 작은 제방이 생긴다. 깊은 곳은 깊어지고 얕은 곳은 얕아지며 자연의 질서가 이루어진다. 물살이 부딪쳐 둑이 터진 곳에는 작은 여울이 생기고 그곳으로 물고기들이 모여든다. 특히 여름 저녁이면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살에 피라미들이 비늘을 반짝이며 여울물을 거슬러 뛰어오른다. 여울물 아래 깊은 소(沼.. 2018. 7. 17.
소나기가 밀어낸 불볕더위 한시, 계절의 노래(111) 통주의 여름비(通州夏雨) 송 진연(陳淵) / 김영문 選譯評 세찬 바람 땅 휩쓸며불볕더위 몰아내고 소나기 하늘 뒤집어저녁 시원함 보내주네 이 때문에 모기 파리모두 자취 감췄음에 저 멀리 가을 서리기다릴 필요 없겠네 長風卷地驅炎暑, 暴雨翻空送晚凉. 只此蚊蠅俱掃跡, 不須迢遞待秋霜.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정태춘의 노래 「한 여름 밤」을 떠올린다. “한 여름 밤의 시원한 소나기 참 좋아라/ 온갖 이기와 탐욕에 거칠어진 세상 적셔 주누나” 2016년 스웨덴 학술원에서는 그 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을 지목하면서 그가 “귀를 위한 시를 쓴다”고 인정했다. 이는 싱어송라이터에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최초의 사례일 뿐 아니라 시와 음악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 의미 깊은 평가였다. 미국.. 2018. 7. 16.
정적을 뚫는 향기 한시, 계절의 노래(88) 주씨 전원(周氏园居) 송 미불(米芾) / 김영문 選譯評 높이 핀 꽃 치렁치렁마루 밝게 비추고 연못 물 찰랑찰랑섬돌 둘러 소리 내네 정적 속 향기 들으며권태에서 깨어나고 빗속에 일 없으니한가한 마음 보이네 高花落落照軒明, 沼水涓涓繞砌聲. 靜裏聞香醒倦思, 雨中無事見閒情.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고등학교 때 이 구절을 두고 이미지즘의 공감각적 표현이라고 배웠다. “푸른”은 시각이고 “종소리”는 청각인데 그것이 엇섞여 인식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 해설을 통해 이미지즘이니 모더니즘이니 하는 문학 용어를 들으며 매우 현대적인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공감각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녹아 있는 매우 오래된 감각이다. “달콤한 목소리”, “쓴 소리”, “시린 하늘”을 상기해보라... 2018. 6. 27.
비 오는 산중 한시, 계절의 노래(84) 무제(無題) 송(宋) 방저(方翥) / 김영문 選譯評 어둑한 비자욱이 내려 산속 오월날씨 차갑네 큰 강은 전혀깨닫지 못하고 계곡물만 불어여울 세차네 暗雨落漫漫, 山中五月寒. 大江渾不覺, 溪壑有驚湍. 비 오는 날에는 마음이 가라앉는다. 저기압의 작용으로 마음도 저기압이 되는 걸까? 최백호의 노래가 제격이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 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를 들어보렴” 둘다섯의 노래는 더욱 애잔하다. “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모습/ 달처럼 탐스런 하얀 얼굴/ 우연히 만났다 말없이 가버린/ 긴머리 소녀야” 설익은 꿈과 사랑은 세월의 물결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졌다. 박인환은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 2018.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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