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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성왕3

오직 박창화朴昌和만 주목한 치술鵄述 이것도 하도 여러번 얘기해서 지겨울 수 있지만, 또 얘기하련다. 《삼국유사》 왕력편 신라 제18대 실성마립간實聖麻立干 조에는 "(실성)왕은 즉 치술鵄述의 아버지다[王卽鵄述之父]"라는 구절이 있다. 도대체 이 구절이 왜 나왔는지 《화랑세기》 출현 이전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치술은 아버지가 실성왕이다?" So what? 느닷없는 구절이기에 이를 설명할 도리가 어디에도 없었다. 첫째, 치술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둘째, 치술 아버지가 실성왕인 게 어쩌라고? 한데 박창화가 필사했다는 《화랑세기》에는 이와 관련한 명확한 언급이 보인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치술은 실성왕 딸로서 남편이 바로 제상이었다. 《삼국사기》에는 박제상, 《삼국유사》에서는 김제상이라고 기록된 바로 그 제상이었다. 이런 《화.. 2020. 10. 27.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교정 : 삼아三我 졸저 《화랑세기 또하나의 신라》(김영사, 2002) 72쪽과 76~77쪽에는 그 유명한 신라 신하 박제상朴堤上(김제상金堤上)과 치술鵄述이라는 여인 사이에서 난 딸들에 대한 일을 다루었거니와, 지금 살피니 이 대목이 교정이 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 이에서나마 이 대목을 교정한다.《화랑세기》 13세 용춘공龍春公 전에 이르기를 “(황아皇我는) 눌지왕訥祗王 딸이다. 그 어머니 치술공주鴙述公主는 실성왕實聖王의 딸로서 제상공堤上公한테 시집가서 삼아三我를 낳았다”고 했거니와 그만 ’삼아三我’를 고유명사로 보는 바람에 커다란 착란이 빚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화랑세기》 원문에도 분명히 보이는 ‘三我’는 그 자체가 딸 이름이 아니라, ‘我’라는 글자를 돌림자로 쓴 세 딸을 말한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까지는 이를 .. 2019. 11. 2.
상식으로 접근하는 역사, 인질 미사흔의 왜국생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면 내물왕 아들로 복수극에 희생되어 실성왕 때 왜국에 인질로 간 미사흔은 아마 10년? 정도 왜국에서 있다가 박제상의 주선으로 귀국한다. 《사기》와 《유사》에는 왜국에서의 미사흔 삶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구출 과정을 보면 엄격한 감시에 시달리며 실상 죄수와 같은 생활을 한 것으로 묘사 혹은 암시된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아무리 인질이라 해도 10년을 저리 쳐박아둘 수는 없다. 그리고 볼모랑 죄수는 다르다. 그렇다면 미사흔의 실제 왜국생활은 어땠을까? 이건 개돼지도 상상 가능하다. 미사흔에게 여자는 없었을까? 십년 동안 홀아비였을까? 열라 주지육림에 놀았으리라. 어울리는 여자들은 급이 달랐다. 개중엔 왜왕의 딸도 있었으니 아도 배게 했다. 미사흔이 도망가자.. 2019.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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