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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막성2

남원 아막성에서 찾은 신라 저수지 *** 조사단을 포함한 한국고고학 전반에서는 여러 용어로 난립하며 나름 구별하지만, 산성에서 드러나는 저런 이른바 집수集水시설은 모조리 池(지)다. 실제 각종 옛 지도나 그림에서도 그리 표시될 뿐이다. 저수지貯水池라는 표현도 우습기 짝이 없다. 池 자체가 저수貯水하는 시설인데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표현인가? 다만 저런 물 채움 시설과 관련해서는 池와 井 정도만 구별했을 뿐이다. 요즘의 댐에 해당하는 말로는 堤(제) 堰(언) 정도가 있다. 다만 이곳에서는 조사단 의견을 존중해 '저수시설'이라는 표현을 임시방편으로 따른다. 남원 고대 산성 '아막성'에서 신라시대 대형 집수시설 발굴 2020-11-17 13:39 고고학적 의미 큰 유물…국가지정문화재 등록 추진 남원 고대 산성 '아막성'에서 신라시대 대형 집.. 2020. 11. 17.
해수(解讐) 삼국사기 권 제27(백제본기 제5) 무왕 : 3년(602) 가을 8월에 왕은 군사를 출동해 신라 아막성(阿莫城)을 포위했다. 신라왕 진평(眞平)이 정예 기병 수천 명을 보내 막아 싸우니 우리 군사가 이득을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 신라가 소타성(小陀城)․외석성(畏石城)․천산성(泉山城)․옹잠성(甕岑城) 네 성을 쌓고 우리 강토를 가까이 쳐들어 왔다. 왕이 노하여 좌평 해수(解讐)에게 명령하여 보병과 기병 4만 명을 거느리고 나아가 그 네 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신라 장군 건품(乾品)과 무은(武殷)이 무리를 거느리고 막아 싸웠다. 해수는 불리하자 군사를 이끌고 천산(泉山) 서쪽의 큰 진펄 가운데로 퇴각하여 군사를 매복하여 놓고 기다렸다. 무은이 승세를 타서 갑옷 입은 군사 1천 명을 거느리고 추격하여 큰 진펄.. 2018.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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