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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71

부처님, 술 좀 마시고 다시 뵙겠습니다 讀終經一卷 불경 하나 읽기를 마침은 猶似出齋時 齋戒를 마친 때와 같아라 始可親觴酌 이제야 술 마실 수 있거늘 斟來何大遲 술상이 어찌 이리 늦는고 ㅡ이규보 (2015. 10. 8) *** 편집자 주 *** 부처님 육성을 담은 경전을 한 권 다 일고 나니 이때 기분은 마치 재계[齋]를 막 끝낸 때랑 비슷하단 말이다. 경전을 읽을 때는 경건해야 하며 이때는 모든 환락은 절제한다. 술을 끊고 여자도 접촉하지 않는다. 규보가 말하는 재계는 여러가지겠거니와 대표적으로 집안 혹은 국가 제사가 있어 이때는 임금도 심신을 정결히 해야 한다 해서 술을 금하고 육욕을 멀리했다. 술에 쩔어 사는 이규보한테 이는 고통이라 그것이 한시바삐 끝나기만 학수고대한다. 그 심정을 절묘하게 포착한 시다. 2022. 10. 9.
맷돌에 이파리 갈아 말차 드신 이규보 선생 요즘은 '별다방'에 가서 언제건 시켜먹을 수 있는 것이 '말차' 무엇무엇이다. 말차라떼, 말차 프라푸치노, 이젠 말차 슈패너에 말차 아포카토까지 나왔다나. 하지만 말차抹茶 곧 가루차는 그리 쉬운 물건이 아니었다. 수확 몇 주 전부터 차광막을 쳐서 그늘에서 기른 찻잎을 말려 줄기와 잎맥을 떼고 가루로 만들거나, 떡처럼 만들어 말린 단차團茶를 떼어내 가루내어야하는데 그 공이 보통 드는 게 아니다. 다른 건 그만두고라도 마른 이파리를 가루내려면, 그 시절에 믹서가 어디 있나? 맷돌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맷돌에서 나온 찻잎가루를 완碗에 담아 물을 부어 젓고 다시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는 게 옛날 송나라 때 차 마시던 방법이었다. 일본 다도가들이 다완에 말차를 풀어 젓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해가 빠를까. 최승로가.. 2022. 10. 5.
오랜만에 다시 그린 이규보 선생 푸른 옷 입은 작은 아이 하얀 살결 백옥 같구나 굽힌 무릎 무척 공손도 하고 이목구비는 뚜렷하도다 진종일 게으름 용납 안해 물병 들곤 벼룻물 바치누나 난 본디 시 읊음 좋아해 시 쓴 종이 날마다 천 장이라 벼루 마르면 게으른 종 부르니 게으른 종놈 귀먹은 척이라 천 번이나 불러도 답 없으니 목이 쉬어서야 그만두었다 네가 옆에 있어 주고부터 내 벼루 마를 날 없구나 네 은혜 어찌 갚으리오 조심히 지녀 깨지나 말아야겠다 幺麽一靑童。 緻玉作肌理。 曲膝貌甚恭。 分明眉目鼻。 競日無倦容。 提甁供滴水。 我本好吟哦。 作詩日千紙。 硯涸呼倦僕。 倦僕佯聾耳。 千喚猶不應。 喉嗄乃始已。 自汝在傍邊。 使我硯日泚。 何以報爾恩。 愼持無碎棄。 - 권13, 고율시, 중 '녹자연적자' ㅡㅡㅡ 별로 기다리신 분은 없으셨을 줄 압니다. 사실.. 2022. 7. 15.
백운거사 휘호도白雲居士揮毫圖 ***(편집자주)*** 백운거사란 이규보를 말한다. 2022. 5. 16.
뭐든지 팔 때는 싸고 살 때는 비싼 법, 불쌍한 이규보 오랜만에 백운거사 이규보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다. 그가 서른아홉살 되던 1206년(희종 2) 3월 11일 아침, 집에 양식이 떨어지고 말았다.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인지라, 이규보의 아내 진씨晉氏는 그의 털옷을 전당포에 맡겨서 밥 지을 곡식을 구해오자고 했다. 원빈처럼 생긴 전당포 주인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음력 3월이면 벌써 만화방창 봄날인데 겨울옷을 제값 쳐줄 리가 없다. 게다가 몇 달만 지나면 찬바람 부는 겨울인데, 그날이 오면 나는 어떻게 지내란 말인가. 이규보는 그 이유로 반대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아내는 남편보다 한수 위인 법, 그에게 당장 가족의 굶주림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되물었다. "이 옷, 내가 직접 바느질한 거니 당신보다 내가 더 아껴요. 하지만 하루에 .. 2022. 5. 12.
나 이런 사람이야, 이규보가 말하는 나 과거에 합격하고서도 벼슬을 오래도록 얻지 못하고, 기껏 얻은 지방관 자리도 떼여 끼니를 거를 정도로 고생하던 우리의 이규보 선생이 드디어 6품 참상관參上官에 오른 것은 그의 나이 마흔여덟 되던 고종 2년(1215)의 일이었다. 그는 그때 임금에게 정사의 잘잘못을 고하는 우정언右正言 자리에 오른다. 쉰이 다 되어 정언 자리냐고 수군대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규보는 별로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한껏 자랑스러워했다. 그가 이때 지은 시 중에는 얼룩무늬 아롱진 서대犀帶, 곧 무소뿔 허리띠를 두고 지은 시가 전해진다. 서대는 아무나 못 매는 허리띠였다. 오죽하면 의종毅宗 임금 때, 그가 총애하는 환관에게 서대를 하사했다가 관료들이 집단 사퇴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던 일이 있었을까. 이규보도 그저 바라만 보던 서대를 허리.. 2022.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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