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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무령왕릉11

《직설 무령왕릉 추보》(1) 박물관 뜰의 쌀가마니 어제 국립경주박물관장을 역임한 미술사학도 강우방 선생이 전화를 주셨다. 내가 무령왕릉 발굴기를 냈다는 소식을 접하시곤 "무령왕릉이라면 나도 증언할 게 있다"면서 얘기를 쏟아냈으니 이야기인즉 이러했다. 강 선생이 무령왕릉 발견소식을 접하기는 그날 석간 신문을 보고서라 했으니 7월 9일이다. 이때 그는 경주인가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대전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는 냅다 송산리 고분군으로 달려갔댄다. "내가 도착한 게 오전 8시쯤일 거예요. 한데 현장엔 아무도 없더라고? 이게 어찌된 일인가 했지. 무덤 바닥을 보니 빗자루 자국 비슷한 게 있더라고?" 그래서 다시 냅다 공주박물관으로 갔다고 한다. 한데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박물관에 가서 보니 김영배 관장이랑 수위 달랑 두 명만 .. 2023. 6. 7.
I had a dream, back to 2016 《 I have a dream 》 문화상품이라 해도 좋고, 요새 유행하는 표현을 빌려 문화콘텐츠라 해도 좋다. 나에겐 꿈이 있으니, 고고학 발굴기를 문학의 당당한 장르 중 하나로 정립하고 싶다. 이를 문화콘텐츠라 하자. 실제 그리 만들고 싶으니깐 말이다. 인문학이 죽어가고 고고학이 죽어간다지만, 나는 그 죽어가는 것이 실은 당당히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그런 꿈이 있다. 발굴만이,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하는 연구만이 고고학이라는 환상을 깨뜨리고 싶은 꿈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고고학은 이 모든 것을 토대로 구축하는 교향곡이다. 그것은 향연이요, 그것은 카니벌이요, 페스티벌이다. 어찌 땅 파고 유물을 캐어내며 유구를 확인하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만이 고고학이리오? 그것을 토대로 그것을 소비하는 모.. 2023. 4. 25.
교보문고서 아들놈이 찾았다는 지 애비 졸저 두 종 제대하고는 곧바로 복학하지 아니하고는 살빼기 돌입한 아들놈이 일요일인 오늘 어쩌다 마눌님과 교보문고를 나간 모양이라 거기서 지 애비 책 두 종을 발견하고선 기념촬영이랍시며 저리하고는 남영동 사저서 꼼짝 않는 지 애비 앞으로 저걸 발송했으니 더 가관은 마눌님이라 이번에도 어김없이 서문만 들추고선 거기에 지 이름 아들놈 이름 거론되는지 확인하고선 하는 말이 당신 참 이거 보면 가정적이야? 하는데 비아냥이렸다. 그러고 보니 낸지 20년이 넘은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와 해직시절 심심풀이 파적으로 손 댄《직설 무령왕릉》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 아니겠는가? 책이 요새 팔리겠는가? 그래도 저 책 내서 이런저런 자리 불려다니며 잘 먹고 잘 살았노라. 2023. 4. 16.
나로서는 모든 걸 쏟아부은 직설 무령왕릉 무령왕릉에 현재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었다 첫째 발굴비화..발굴단 일원인 조유전 선생이 일전에 이를 초抄한 적 있지만 이를 토대로 나는 2001년에 그 완결편 전초를 이미 선보였다. 작금 한국사회에서 통용하는 발굴 일화는 그때 15회 분량으로 정리한 내 기사가 뼈대다. 나는 발굴단장인 김원룡이 이 발굴을 자아비판했다 해서 그걸로 모든 것을 용서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외부에서의 진짜 충격을 그는 받은 적이 없다. 간담을 서늘케 하고 싶었다. 둘째, 설계자를 남조南朝 양梁나라 사람들로 확정했다. 이는 종래 梁官瓦爲師矣로 판독한 송산리 6호분 전돌 명문을 끌어엎음으로써 가능했다. 瓦는 어처구니없는 오독이었다. 나는 볼펜 똥으로 보아 그것을 쳐냈다. 이렇게 됨으로써 이 문구는 양나라 관리를 .. 2023. 3. 26.
글쓰기 환경의 변화, 오래 사는 놈이 이기기 마련 작년 모처에서 원고 집필 의뢰가 왔다. 나한테 할당한 주제는 언론에 비친 한성백제 유적이었다. 내가 오랫동안 문화재 분야 기뤠기로 활동한 데다 풍납토성 발굴기를 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를 탈초하면서 각 언론사가 구축한 피디에프 원문서비스에 거의 절대로 기대었다. 신문만이 아니라 다른 자료도 검색이 용이하다. 2000년 졸저 풍납토성을 낼 때만 해도 나는 일일이 신문잡지를 찾아다니며 뒤져야 했다. 그에서 놓친 자료가 얼마나 많겠는가? 작년 원고를 쓰면서 그에 고맙고 그에 분개하기도 했다. 식민지시대 조선을 주무대로 활동한 일본의 역사고고학도들은 그 무렵 내가 열전 혹은 약전이라도 쓰겠다며 정신없이 자료를 긁어모은 적이 있다. 금서룡 관야정 흑판승미야 워낙 유명하니 그런대로 족적을 정리했지만 기타 오전성오니.. 2023. 1. 14.
김치가 묵으면 찌게가 되지만 원고는 쓰레기가 된다 15년전 원고를 꺼냈다. 여러 차례 이사와 잦은 컴터 교체에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새 여러 사정이 변했다. 그에 등장한 생존인물 일부는 이미 고인이 되었다. 현재형이 과거형으로 변한 곳은 부지기에 이른다. 고치려니 한도끝도 없다. 더구나 그새 얼마나 많은 신진 연구가 쏟아져 나왔던가? 적당히 타협하는 수밖에 없다. 내 생각도 변한 곳이 많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2015. 12.3) *** 원고도 원고 나름이겠지만 저에서 말하는 묵힌 원고는 그 이듬해 도서출판 메디치미디어에서 《직설 무령왕릉》이란 이름으로 나온 단행본 원고를 말한다. 이 책은 크게 발굴기와 무령왕릉 자체에 대한 탐구 두 편으로 구성되는데 둘 다 15년이 지나다 보니 문제가 심각해졌다. 먼저 발굴기의 경우 그 상당 부문이 인터뷰.. 2022.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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