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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8

화랑세기가 아니라도 다 알 수 있다는 포석정 ‘포석정鮑石亭 다르게 보기’는 화랑세기가 몰고 온 중대한 변화 중 하나다. 종래 포석정이라면 딩가딩가 음주가무하는 장소로 알았다. 그것은 삼국사기 신라 경애왕본기 4년(927) 조가 저록한 다음 사건이 발단이었다. 가을 9월, 견훤이 고울부에서 우리 군대를 공격하니, 임금이 태조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태조가 장군에게 명령하여 굳센 병사 1만을 내어 가서 구원하게 하였다. 견훤은 구원병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겨울 11월에 서울을 습격하였다. 이때 임금은 왕비, 후궁 및 친척들과 함께 포석정(鮑石亭)에서 연회를 베풀어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적병이 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어찌할 줄을 몰랐다. 임금은 왕비와 함께 후궁으로 도망쳐 들어가고, 친척과 공경대부 및 여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 숨었다. .. 2024. 1. 9.
포석정 비밀을 푸는 열쇠는 쌍방울에 있다 포석정鮑石亭 현재 모습은 몸통과 그 몸통으로 연결하는 배수관 같은 두 줄이 꽈배기를 이룬 구조를 한다. 이 몸통이 바로 바다 조개 중에서도 포어鮑魚, 곧 전복 모양을 본뜬 것임은 두루 알려졌고, 실제로도 그 모습이 전복의 그것이라, 이것이 바로 여근女根 혹은 여음女陰임은 앞서 지적했다. 포석정 그 비밀을 푸는 열쇠는 여근, 혹은 전복인 저 몸뚱아리가 아니라, 그 한 쪽 귀퉁이로 연결된 배배 꼬인 배수관 같은 두 X자형 부속 시설이다. 보다시피 현재는 공교롭게 그 한가운데에 거대한 느티나무 노거수가 자란다. 한데 그 끝터머리 각각에는 석조石槽가 하나씩 있다. 이 석조 두 개가 무엇인가? 볼짝없다. 저 몸통이 여근이라면, 이건 볼짝없이 쌍방울이다. 포석정은 간단하다. 여근과 쌍방울을 결합한 구조물이다. 여근.. 2022. 12. 25.
전복[鮑魚]과 포석정鮑石亭, 그리고 나정蘿井 바다 생물, 특히 그 조개류 중에 전복은 그 생김을 두고 항상 남자들이 쑥떡하는 이유는 새삼 더 보탤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 생김은 딱 여음女陰 혹은 여근女根이라, 이 전복 모양을 본뜬 석조 건축물이라 해서 신라시대 저명한 유산으로 경주 남산 기슭 포석정鮑石亭이 있다. 보다시피 이 모양 전복 그대로다. 전복이 여음女陰이라면, 포석정 저 구축 또한 여근이라 봐야지 않겠는가? 신라인들이라 해서 여근이 다르게 생겨 먹었을 거 같은가? 볼짝없다. 저 포석정은 전복을 본뜬 것이며, 그 원초 의미는 여근이며, 자궁子宮이다. 고대인들이 저런 섹슈얼 코너테이션 sexual connation를 동원하는 까닭은 생명 탄생, 창조 이런 뜻이다. 그런 의미를 담았으므로 당연히 저 포석정이 지닌 원천 기능 역시 생명 탄생이다.. 2022. 12. 25.
다시 생각하는 경애왕의 비극 나는 앞선 고찰들을 통해 포석정鮑石亭은 신성한 맹서를 토대로 하는 혼인이 이뤄지는 웨딩홀이었으며, 한편으로는 화랑과 그가 이끄는 무리한테는 종묘와 같은 신성 공간이었음을 주장했다. 그곳은 웨딩홀인 까닭에 남녀 결합을 상징하는 석조 구조물을 형상화한 것이며, 비단 이뿐만이 아니라 그곳에는 역대 화랑 중에서도 특히나 존경받는 문노와 같은 인물 초상화를 봉안한 제의시설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포석정이 신라시대에는 포석사鮑石祀 혹은 약칭 포사鮑祀라 일컬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성격에서 포석사가 신라 하대로 올수록 유흥시설로 활용되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웨딩에는 언제나 유흥이 따르는 까닭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천년왕국 신라가 마침내 종적을 감추고 마는 그 결정적인 사건, 다시 .. 2020. 9. 21.
포석정鮑石亭, 그 천년의 비밀을 까부시며 1. 화랑세기가 폭로한 포석정 경애왕 비극의 주무대인 경주 포석정이 화랑세기에는 포석사鮑石祀 혹은 포사鮑祀라는 이름으로 여러 군데 보이거니와, 祀라는 말에서 엿보듯이 이곳은 유흥을 위주로 하는 정자가 아니라, 신성한 제의祭儀 공간으로 등장한다. 요컨대 화랑세기가 말하는 포석정은 사당이다. 건립시기는 명확한 언급이 없지만, 적어도 법흥왕 이전임은 확실하다. 종래 포석정은 신라 말기에 등장하는 까닭에 막연히 그 무렵에 만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화랑세기가 폭로하는 포석사는 그 연원이 아주 깊어 신라 초기로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을 제시한다. 2. 예식장으로서의 포사鮑祀 포석사 혹은 포사의 기능과 관련해서는 현재 두 가지 정도를 적출하는데 첫째는 예식장이 그것이며, 다른 하나는 화랑의 전당이다. 먼.. 2020. 9. 21.
포석정, 버닝썬에서 종묘로 경주 남산 기슭 포석정鮑石亭은 유흥주점 버닝썬으로 한동안 통용했으나, 당당한 신라의 종묘였다. 그 정식한 이름은 포석사鮑石祀, 약칭 포사鮑祀였으며그것이 등장한 시기는 법흥왕 이전 신라 중고기 혹은 상고기였고 그것은 신라라는 왕조의 통합성을 버무려낸 국가사당이요 국가보혼시설이었다. 그곳은 현충원이었다. 2019.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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