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선덕여왕 시대 고위 관료로 상대등까지 올랐다가 왕위 찬탈을 노린 반란을 꾀하다 김유신에게 주살됐다.
삼국사기 권제5(신라본기 제5) 선덕왕 : 14년(645)...겨울 11월에 이찬 비담(毗曇)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16년(647) 봄 정월에 비담과 렴종(廉宗) 등이 말하기를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해서 반역을 꾀하여 군사를 일으켰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삼국사기 권제5(신라본기 제5) 진덕왕 : 원년(647) 정월 17일에 비담(毗曇)을 목 베어 죽였는데, 그에 연루되어 죽은 사람이 30명이었다.
삼국사기 권제41 (열전 제1) 김유신 : 16년 정미(647)는 선덕왕 말년이고 진덕왕 원년이다. 대신 비담(毗曇)과 렴종(廉宗)이 여자 임금(女主)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여 군사를 일으켜 왕을 폐하려 하니 왕은 스스로 왕궁 안에서 방어하였다. 비담 등은 명활성(明活城)에 주둔하고 왕의 군대는 월성(月城)에 머물고 있었다. 공격과 방어가 10일이 지나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한밤 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지니 비담 등은 사병들에게 말하였다.“내가 듣건대 ‘별이 떨어진 아래에는 반드시 피흘림이 있다.’고 하니, 이는 틀림없이 여왕[女主]이 패할 징조이다.”병졸들이 지르는 환호성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대왕이 그 소리를 듣고 두려워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다. 유신이 왕을 뵙고 말하였다. “길함과 불길함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이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나라] 주(紂)왕은 붉은 새가 나타났어도 망하였고, 노나라는 기린을 얻었어도 쇠하였으며, [은나라] 고종은 장끼가 울었어도 중흥을 이루었고, 정공(鄭公)은 두 마리 용이 싸웠으나 창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덕이 요사한 것을 이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별이 떨어진 변괴는 족히 두려워 할 것이 아닙니다. 청컨대 왕께서는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이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붙인 다음 연에 실려 띄워 하늘로 올라가듯이 하고는 다음 날 사람을 시켜 길가는 사람에게 “어제 밤에 떨어진 별이 다시 올라갔다.”는 소문을 퍼뜨려 반란군으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하였다. 그리고 흰말을 잡아 별이 떨어진 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다음과 같이 빌었다. “자연의 이치[天道]에서는 양은 강하고 음은 부드러우며, 사람의 도리에서는 임금은 높고 신하는 낮습니다. 만약 혹시 그 질서가 바뀌면 곧 큰 혼란이 옵니다. 지금 비담 등이 신하로서 군주를 해치려고 아랫 사람이 윗사람을 침범하니 이는 이른바 난신적자(亂臣賊子)로서 사람과 신이 함께 미워하고 천지가 용납할 수 없는 바입니다. 지금 하늘이 이에 무심한 듯하고 도리어 왕의 성 안에 별이 떨어지는 변괴를 보이니 이는 제가 의심하고 깨달을 수 없는 바입니다. 생각컨대 하늘의 위엄은 사람의 하고자 함에 따라 착한 이를 착하게 여기고 악한 이를 미워하시어 신령으로서 부끄러움을 짓지 말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나서는 여러 장수와 병졸을 독려하여 힘껏 치게 하니 비담 등이 패하여 달아나자 추격하여 목베고 9족(族)을 죽였다.
화랑세기 24세 천광공(天光公) 전 : 그때 국사(國事)가 점차 어려워졌다. 공과 여러 낭두(郞頭)가 낭도(郎徒)를 거느리고 친히 활 쏘고 말달리기를 익혔는데, 모인 자들 중에서 뽑아서 병부에서 보충하였다. 공이 5년간 풍월주 지위에 있는 사이에 낭정(郎政)은 무사(武事)로 많이 돌아갔다. 선덕제(善德帝)가 병이 몹시 위독해지자, 비담(毗曇)과 렴종(廉宗)이 모반했다. 유신공(庾信公)이 신주(新主·진덕)를 받들어 전쟁을 독려했다. 그때 서울[京師]의 군대가 적어 공이 낭도를 모두 동원해 먼저 그 진으로 돌격하니 비담이 패하여 달아나고 난이 평정되었다. 공은 그 공으로 발탁되어 호성장군(護城將軍)이 되었다. (이에) 풍월주 지위를 부제(副弟)인 춘장(春長)한테 전해 주고 오로지 왕사(王事)에 힘써 변방에 나가서는 장군이 되고 조정에 들어와서는 재상이 되며[出將入相] 많은 공적이 있었기에 증흥 28장(二十八將)의 한 사람이 되었다. 가히 공경할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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