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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특별하지 않은 박물관 이야기

전시 스토리 :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까

by 느린 산책자 2023.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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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을 열었던 때였다.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갑자기 울컥하면서 한참을 펑펑 울었다.

‘메일을 보내신 시간을 보니, 선생님의 고생을 알 것 같습니다.’라는 문장.

전시를 위해 유물을 대여해주기로 한 기관에서 회신 메일을 보내며, 힘내라는 말과 함께 덧붙인 문장이었다. 집이어서 망정이지, 사무실이었으면 엄청난 사연 있는 여자로 둔갑했을 것이다.

갑자기 울컥했던 이유
정말 전시를 즐기는 일부 학예사를 제외한다면, 전시 오픈이 다가올수록 대다수의 학예사들은 점점 피폐해진다(아니 어쩌면 그들도 피폐해질지도! 어쨌거나 이 말인 즉슨, 저는 전시를 즐기지 않습니다 ㅋ). 정해진 기한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상당한 스트레스다. 계속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일을 진행해야 하는 것도 생각지 못하게 마음이 피곤해지는 일이다. 그런데 그때 그 전시는 처음부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전시 주제 때문이었다. 우연의 일치로, 우리 박물관을 포함하여 총 세 곳의 박물관이 한 달 사이에 비슷한 주제로 연달아 오픈하게 된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차이를 두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나를 상당히 압박했다. 당시에는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각했는데, 아마도 메일의 마지막 문장이 어느 한 곳을 툭 건드렸던 것 같다. 그 문장이 순간 나에게 커다란 위안을 주었다.

​이후에도 비슷한 스트레스는 또 있었다. 같은 기간은 아니었지만, 10년 전 열렸던 비슷한 전시와 달라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나를 괴롭혔다. 내용도 유물도 비슷한 그 전시와 무엇을 달리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다.

#내 전시의 내용을 거의 담고 있던, 10여년 전 쯤의 부산근대역사관 전시.

 

우리답게
그런데 생각해보면 100% 새로운 유물이나, 주제라는 것은 없지 않을까. 이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전시 스토리'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나에게 주어진 유물과 전시 주제를 우리 박물관에 맞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전시를 준비하는 학예사의 가장 큰 고민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그 고민의 키 역시 ‘우리 박물관에 맞게’라는 말에 있다.

​나의 경우는 나에게 주어진 주제가 우리 박물관만이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 어느 박물관이든 다룰 수 있는 주제라면 이 질문을 먼저 던져 본다. 

 ‘관람객이 굳이(!) 우리 박물관까지 왔다면, 무엇을 보고 싶어 할까.’

 조선시대 전시를 할 때는 지척에 있는 국립박물관, 그리고 근현대 전시를 할 때는 인근의 또 다른 국립박물관을 생각하며 이곳들과 차이가 될 지점을 생각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다른 곳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볼 거면, 더 예쁜 유물이 있는 곳의 전시를 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 아, 이건 너무 솔직했나?!

당신의 키워드, 우리의 키워드
다들 자신만의 키워드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서울’이 키워드이다. 신규 학예사일 때는 ‘서울’에 집착하는 것처럼 느껴져 지겨울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우리를 구별 짓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안다. 

 그 키워드를 살리기 위해서는 여러 고민들이 필요하다. 유물에 얽힌 여러 이야기 중, ‘서울’이라는 키워드를 추출하여 이야기를 엮어본다거나 오늘날 서울 사람들에게 생각할 지점을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로 엮어보거나 하는 식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유물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각주처럼 되는 것이다. 메시지에 매몰되다 보면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다. 

 적고 보니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런데 이 간단한 것이 전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학예사들을 괴롭힌다. 전시를 보면서, 이 학예사는 어떤 점이 괴로웠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전시를 관람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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