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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변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이 나한테 자주 묻곤 하는 말이, 저기가 북한인가라는 물음이다. 내 대답은 간단하다. "남한 땅인지 북한땅인지 구별하는 방법은 실로 간단하다. 나무 한 그루 없으면 북한 땅이다." 

이런 사정은 압록강변, 두만강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야 두 강이 중국 혹은 러시아와 북한 국경인 까닭에, 어느 곳이 북한 땅인지 견줄 필요조차 없지만, 역시 이곳에서 봐도 북녘 땅 산에는 나무 한 그루 온전히 자라는 데가 없다. 남북화해 국면에 따라 남북 협력 방안이 다양하게 논의되는 형국이거니와, 개중에서도 가장 절박한 곳이 철도와 산림이라 해서, 이 분야에 집중하는 까닭이 그 완비 정비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성 인근 헐벗은 산


북한의 저 앙상한 산림 사정이 우리 역시 시계추를 거꾸로 돌려 40년 전만 가도 마찬가지다. 온산이 민둥산 붉은산이라, 비가 조금만 와도 사태가 걸핏하면 났고, 그에서 강물에 씻긴 흙이 쌓이는 바람에 평야지대에서는 하상河上이 높아쳐 또 걸핏하면 강물이 범람했다. 한강변 서울만 해도 80년대 전두환 정권에 의한 치수 성공 이전까지 언제나 홍수가 범람한 곳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산림 사정은 언제 어떻게 비롯하는가? 내가 각종 자료를 검토하건대 17~18세기 교체 무렵에 한반도는 급격한 산림 파괴가 일어났다. 서력기원 절대 연대로 환산하면 1700년대가 시작할 무렵, 한반도는 전체가 민둥산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결정적인 근거 중 하나로 내가 늘 애용하면서 끌어다대는 대목이 다음이다. 

옛날에 나의 선친께서 계미년(1703) 연간에 강릉부사로 부임하셨는데 당시 내 나이 14세였다. 부모님의 행차를 따라가느라 운교역에서 강릉부 서쪽 대관령에 이르렀다. 평지나 높은 고개 따질 것 없이 수많은 나무 사이로 길이 나 있고, 올려다봐도 하늘의 해를 보지 못한 채 무려 나홀 동안이나 길을 갔었다. 그러나 수십 년 전부터 산과 들이 모두 개간되어 농경지가 되었고, 촌락이 서로 이어져서 산에는 한 치 크기의 나무도 안 남아 있었다.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다른 고을 또한 같은 실정임을 알 수 있다. 태평성대라 백성들의 수가 점차 불어나는 만큼 산천도 조금씩 피해를 입는 정황이 엿보인다. 옛날 인삼이 나던 곳은 모두 대관령 서쪽 깊은 산골짜기였으나 산은 벌거벗고 들판은 불에 타는 바람에 인삼의 소출이 점차 드물어졌다. 홍수가 나고 산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흙이 한강으로 유입되어 한강의 수위가 점차 얕아지고 있다.(안대회·임영길 외 옮김 《완역정본 택리지》, 휴머니스트, 2018, 81쪽) 택리지 팔도론 강원도편에 보이는 말이다. 

1690년에 태어나 1756년에 죽은 이중환의 《택리지擇理志》 중 조선 팔도별 인문지리 총람인 '팔도론八道論' 중 '강원도' 편에 보이는 말이다. 이중환이 《택리지擇理志》 를 완성한 때가 1752년 무렵임을 고려할 때, 그리고 그가 14살 때는 산림이 울창했다는 증언을 보탤 적에, 전국적인 산림파괴가 1710~40년대 무렵 급겹하게 진행된 일임을 추찰한다. 이 무렵이 역사학계 일부에서는 소빙하기였네 하는 주장을 하는 시기인 것으로 알거니와, 이 역시 고려할 사안이기는 할 것이로대, 그 원인으로 이중환은 급격한 인구 증가를 꼽았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철원 지역 북한의 헐벗은 산


저 무렵이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은 이미 그에서 백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 기간 장기간 평화가 지속하거니와, 비록 정치권에서는 붕당 정치에 따른 부침이 극심하기는 했지만, 특히 근 반세기간 계속한 숙종시대는 외란이 없는 시기였다. 이 숙종 연간에 인구가 급격히 불어난 것이다. 좁은 땅에 급격한 인구 증가는 재앙을 초래했다. 먹고 살려니 산림을 개간하는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이가 온돌 보급을 이야기하나, 내 보기엔 소빙기니 온돌이니 하는 요인은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인구 폭발기였다. 

나아가 이 짧은 글에는 그것이 초래한 재앙을 생생히 증언한다. 다른 무엇보다 하상 상승에 따른 범람이 중대하다. 이 하상 범람은 후대에는 충적대지 발달로 귀결한다. 







 




  1. 아파트담보 2018.10.24 21:18 신고

    인구증가로 본 18세기 로맨틱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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