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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준6

여운형은 왜 조선총독이 자신에게 권력을 이양했다고 했는가 여운형은 왜 조선총독이 자신에게 행정권과 치안권을 이양했다고 했을까. 8월 15일 이후, 일본의 해외 식민지가 일거에 무력화한 것은 조선만의 일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베트남. 비시 프랑스 정권이 무력화 기미가 보이자 일본은 베트남에 진주하여 이를 통제하기 시작했지만 1945년 8월 전쟁이 패전할 가능성이 보이자 일본의 현지 통제는 거의 무력화하였다. 이때문에 정치적 공백이 발생하였고 그때부터 연합군이 베트남에 진주하기 전까지 기간 동안 호치민의 베트민은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고 선포한다. 조선도 마찬가지로 1945년 8월 15일을 전후하여 조선총독부는 사실상 무력화하여 미군정이 진주하기까지 약 3주간의 공백기간이 발생하는데, 이 기간 동안 조선총독이 한인 유력자 등에게 치안공백을 줄이기 위한 협조를.. 2023. 9. 9.
호치민에 투영한 건준 일본군 무장해제 후에는 어떻게 될지 전혀 비전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베트남도 45년 8월 15일 이후, 힘의 공백기가 만들어졌는데 그 공백의 정도는 일본제국의 지근거리에 위치한 조선의 경우보다 훨씬 강력했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진주한 군대가 북쪽의 중국군과 남쪽의 영국군이라는 점에서 소련과 미군이 진주한 한반도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베트남이 45년 8월 15일 이후, 가장 두려워 한 것은 2차대전 이전 이 지역을 식민지배하던 프랑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특히 프랑스는 비시정권 이후 드골의 자유프랑스가 연합국-승전국의 편에 섬으로써 베트남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해방과 함께 추축국 일본이 궤멸되어 사실상의 식민모국이 공중분해 되어버린 조선과는 상황이 달랐.. 2023. 9. 9.
건준의 문제는 왜 발생했는가 한국의 좌파 진영에서 건준[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문제를 보는 시각은 비교적 간단하다. 해방 후 건준이 총독부로 부터 치안 유지권을 인계받아 "건국을 준비하였으며" 9월 초에는 이를 "인민공화국"으로 발전시켜 국가로까지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준의 "법통"을 부여하기 위해 이 건준이라는 것은 사실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해방 1년 전부터 여운형呂運亨(1886~1947. 7. 19)은 이 전국적으로 조직한 "비밀조직"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방후 스토리를 써 내려가면 당연히 9월 초에나 들어와 총독부로부터 정권을 인수인계받은 미군정은 "불청객"이 될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건준이 이렇게 한달 조금 못되는 기간 동안 해프닝의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이 항복한 후 미국이 일본 본.. 2023. 6. 27.
일본의 항복에서 미군정까지 알다시피 일본의 항복은 1945년 8월 15일에 있었다. 이때부터 한국에 군정이 시작될 떄까지의 사건을 요약해 본다. 여운형의 건준의 활동은 초록색으로 표시하였다. 이들의 활동이 정상적인 활동이었는지 여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1945. 8.11-8.15일 사이: 조선총독이 여운형에게 인수인계를 제의 했다고 주장 1945. 8. 15 일본의 무조건 항복 조선총독이 여운형에게 행정권과 치안권을 이양했다고 주장. 여운형이 건국준비위원회를 가동. 1945. 8. 17 미국정부에 의한 군정명령 1호를 발효 (일본에 대해). 그 내용을 보면 미국은 일본에 대해 (조선, 대만 포함) 아래와 같이 해당 지역의 일본군 무장해제를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It instructed Japanese forces to su.. 2023. 6. 26.
2차대전의 전개와 해방전후사 물론 우리의 운명을 다른 나라들이 전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해방정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2차대전은 뚝 잘라서 버려버리고, 2차대전 이후 해방된 이후만 잘라 항복한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진주한 미군을 점령군 운운은 웃기지도 않는 논리이다. 어제까지 일본제국 조선총독부 관할이던 지역을 1945년 8월 15일 이후, 일본과의 전쟁에서 뭘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민의를 수렴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건준과 인공을 들이대며 이것을 한국정부로 인정하지 않으면 미군은 점령군-정복자라고 우겨댄다면, 그런 논리가 어디있나?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1937-1945년까지 세계대전의 이해가 가장 우선적이며 그 안에서 한국의 독립을 설명해야 한다... 2023. 6. 24.
미국의 배신?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3/06/24/MSDQQE7LTVGYFOKFNFSOEKF2IM/ “미국은 얄타에서 한국을 소련에 팔아넘겼다” 미국은 얄타에서 한국을 소련에 팔아넘겼다 아무튼, 주말 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 이승만이 제기한 얄타 밀약설 www.chosun.com 글쎄. 팩트로만 보자면 이 부분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이승만의 밀약설 비판 제기도 독립운동가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연 당시 조선에서 미국의 얄타밀약을 "조선에 대한 배신"이라고 이야기할 상황이었냐 하는 점이다. 당시 미국은 태평양 군도의 일본 점령지를 하나씩 함락시키고 있었는데 일본군의 결사저항에 상당히 고전하고 있었다... 2023.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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