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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병7

일제시대말: 학병이 일본군 소위 되기 필자 또래는 아마 대학 때 "문무대"와 "전방입소"라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대학 1학년 "문무대", 대학 2학년때 "전방입소"를 해서 단기간 군사훈련을 받은 것으로, 뭐 일차적인 목적은 당시 대학생들이 하도 데모를 많이 하다 보니 잡아다가 조국의 분단현실을 체험하게 해라~ 라는 당시 군사정권의 발상에서 나온 과정이었는데, 필자 기억으로는 학점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문무대를 가건 전방입소를 하건 그것 때문에 하던 데모를 안할 리는 없고, 그건 그거대로, 이건 이거대로 그랬다. 일제시대 말. 스스로 원해서 육사나 만군군관학교에 진학한 경우를 빼면, 학병장교가 남게 되는데, 당시 학병장교라는 건 요즘으로 치면 딱 학군사관 ROTC 정도 된다. 전문학교 재학 이상의 고등교육자 중에서 선발하여 단기간.. 2023. 9. 20.
고보 졸업 후 일본 대학으로 직행한 사람들 언젠가도 쓴거 같지만, 일제시대, 고보졸업후 일본대학에 진학했다고 프로필이 나오는 경우는, 대개 그 대학의 예과 아니면 전문부에 해당한다. 이건 대학과정이 아니다. 대학 예과나 전문부는 당시 조선에 있었던 연희전문, 보성전문 등과 같은 전문학교, 즉 고등학교 과정이다. 이런 전문학교가 대학 부설로 있게 되면 그게 예과 혹은 전문부가 된다. 원래 전문부라는 건 전문학교였던 학교가 대학으로 승격하면 기존의 전문학교 졸업생이 졸업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학교였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짭잘하다는 것을 눈치챈 사립대학들은 전문부를 그냥 정식과정으로 대학에 남겨버렸다. 와세다, 메이지, 주오, 게이오 모두 전문과가 있었다. 이 때문에 일제시대 명사들 프로필에서, 모모 고보 졸업 후 일본 대학 졸업. 이렇게 나.. 2023. 9. 20.
일제시대의 지식인 [34]: 백인엽 백인엽은 백선엽 친동생이다. 백인엽은 백선엽과 달리 학병 출신이다. 프로필을 본다. 백인엽은 온라인에 소학교와 고보를 언제 입학-졸업했는지 자료가 자세하지 않다. 다만 학교 이름은 알 수 있다. 평안남도 강서 약송소학교 평안남도 평양 숭실고등보통학교 숭실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 유학을 하는데 안터넷에는 일본 메이지 대학교 경제학과 학사(1943년) 라 하여 1943년에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나온다. 백선엽은 1923년 생이니 나이 20에 메이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셈인데.. 매우 이르다. 필자 생각으로는 1943년 당시 메이지대 졸업이 아니라 재학 중이 아닌가 싶은데 나이로 보면 메이지대 졸업보다는 재학이 좀 더 정황상 잘 맞는 부분이 있다. 사실 백인엽은 숭실고보를 졸업하고 바로 유학을 했기 때문에, 대.. 2023. 9. 20.
윤동주와 송몽규 이 두 사람에 대해서는 민족시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 개인적으론 이 두 사람은 민족시인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본다. 죽을 때까지 저항한 민족시인이라는 것인데-. 사실 윤동주와 송몽규는 80년대 대학가에 흔하게 존재한 젊은이들과 별차이가 없다. 시대가 암울하여 비운에 명을 달리하였을 뿐이다. 이 양반들은 그 고비만 넘겼으면 아마도 해방 이후 적당한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면서 살아갔을 것이고, 천수를 다하고 인생을 마쳤을 수도 있다. 요즘 태어났다면 요즘 젊은이들처럼 생각하고 고민하는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대개 격렬한 저항으로 유명해 진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서는 경외하지만 뭔가 나와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는 느낌이 커서 그만큼 멀게 느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두 사람.. 2023. 9. 19.
끌려간 학병과 생존을 선택한 조선지원병 일제 말 학병과 조선지원병제도가 있었다. 이 둘은 얼핏 듣기에 비슷하여 자주 혼동하고 하는데 사실 이 두 제도는 아주 다르다. 이 두 제도 중에 먼저 실시된 것은 조선지원병이었다. 조선지원병에 지원할 자격은 처음에는 소학교 졸업이었다. 그런데 너무 지원자가 적었다. 애초에 조선땅에는 소학교 졸업자도 많지 않았던 탓일 게다. 그래서 그 후 소학교 4년인가 3년인가로 지원 자격을 낮추었다. 이 정도라면 글자를 간신히 읽는 정도라 군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 뻔했다. 이 조선지원병제도에 나간 사람들은 그래서 장교가 없다. 말단 사병을 전전하거나 좀 잘 풀린 사람들은 약간의 진급도 있었지만, 그래봐야 장교는 아니었다. 이 조선지원병을 강제로 끌어갔냐 아니면 지원이냐하는 문제로 시끄럽지만, 필자가 보기엔 그.. 2023. 9. 7.
조선인 지원병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조선인 지원병은 학병과 다르다. 학병은 전문학교 재학 이상의 사람들로 배울 만큼 배운, 조선땅에서는 당시 요즘으로 치면 흔하디 흔한 박사학위 소지자 보다 더 희귀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조선땅에 전문학교 이상 고학력자는 6000-7000명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람들이 바로 학병 대상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고학력 인텔리들이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장교 재원으로 끌고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양반들 중 지원자가 있다 하여 친일 논쟁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내 생각에는 이 사람들은 장교 임관시켜 준다고 그 기회 잡겠다고 군대를 지원해 들어갈 그런 위치가 아니었다. 당시 전문학교 이상이란 정말 희귀하고 사회생활을 해도 소위 상당의 직급은 받아 생활 가능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학병은 거의 전.. 2023.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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