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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미라44

마왕퇴 (12): 회곽의 역할을 했던 백고니, 청고니 조선시대 미라는 다들 알다시피 일부러 만든 인공적 미라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시신이 모두 잘 썩기를 바랬지만, 또 한 가지 벌레와 식물 뿌리, 도굴꾼으로부터 시신이 완전히 썩을 때까지 지켜지기를 원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주자가례의 회곽이다. 조선시대 미라의 형성 기전은 아직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회곽이 큰 역할을 했음은 틀림없다. 회곽이 온전하지 않은 무덤에서는 미라가 나온 적이 없음에서이다. 조선시대 회곽을 연구한 많은 분이 아마 회곽이야말로 조선시대 미라가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마왕퇴 미라는 일견해서 조선시대 미라와 다른 것 같지만, 많은 부분에서 이 둘은 서로 닮았다. 특히 조선시대 무덤의 회곽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마왕퇴의 백고니, 청고니, 즉 햐얗.. 2023. 10. 31.
마왕퇴 (11) : 장사長沙 한묘漢墓의 특이한 점 마왕퇴 미라가 나온 무덤은 한대의 무덤으로 이른바 "목곽묘"다. 우리나라도 낙랑 고분과 관련하여 한대 목곽묘에 대해서는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연구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 과정에서 대동강 유역 목곽묘는 중원과는 그 양상에 있어 차이가 있다던가, 전축묘 대신 소위 귀틀무덤이라는 목곽이 더 오랫동안 최정상급 지배층의 묘제로 사용되었다던가, 하는 소위 대동강 목곽묘의 "베리에이션"도 많이 지적된 것으로 안다. 마왕퇴 한묘가 바로 그렇다. 이 마왕퇴 한묘도 넓게 봐서 목곽묘에 포함되겠지만, 그 규모나 부장품 등에서 전한 제후의 무덤이므로 다른 목곽묘에서 볼 수 없었던 정도의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고, 또 그 구조에 있어서도 특이한 점이 있다. 마왕퇴 한묘의 특징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목곽 주변에.. 2023. 10. 30.
마왕퇴 (10): 인증 도장, 봉니封泥 * 마왕퇴는 문화적 측면은 김단장이 쓰실 것이라 깊이 다루지 않으려 했는데 검토하다 보니 이따끔씩 짧게라도 멘트를 남겨두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싶어 이런 것은 함께 다룬다. 마왕퇴에서는 봉니封泥가 나왔는데 그 중에 많은 것이 "대후가승軑候家丞" 그리고 "우위右尉" 봉니다. 열후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 중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이 "가승家丞"이라고 한다. 마왕퇴 봉니에서 "가승"명 봉니가 많은 것은 피장자의 사망 후 무덤에 함께 묻는 부장품의 최종 점검을 "가승"이 한 탓이라 한다. "우위" 봉니는 아마도 피장자가 분봉 받았던 "대후국"의 "우위"였을 것이라는데, 대후국의 우위라고는 해도 대후인 피장자에게 피종속 된 관계는 아니었다고 한다. 대후국에는 별도의 현령縣令이 있었고 이는 한 조정에 직접 종속되어 .. 2023. 10. 29.
마왕퇴 (9): 방부처리 중인 미라 보자 몰려든 수십만 군중 마왕퇴 시신은 원래 이를 보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었지만, 결국 이를 방부처리키로 했다. 방부처리는 해부용 시신이나 좀 얻어볼까 하고 찾은 호남의학원 해부학교수들을 잡아 놓고 이들에게 협박 반 사정 반으로 제발 도와달라 해서 이루어졌다. 사실 해부학교수들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의학교육용 시신에 대한 방부처리를 하는 방식대로만 처리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방부처리용으로 알코올과 포르말린 혼합액을 주입했다고 되어있는데, 대개 혈관에 방부액을 흘려 보내면 이 방부액이 몸 안 곳곳에 퍼져 있는 모세혈관까지 따라가며 시신을 더 썩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마왕퇴 미라의 경우도 같은 방식으로 혈관 속에 방부액을 흘려 보냈던 모양인데 아마도 큰 혈관은 흘러 지나갔겠지만 소혈관 이하.. 2023. 10. 29.
마왕퇴 (8): 만병통치약 마왕퇴 기록을 보면 중국 대중은 조용한가 싶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몰려들어 쑥밭을 만들어 놓고 떠나가는 존재로 나온다. 이 당시가 문화혁명 절정기였던 탓도 있고, 뭐 솔직히 있는 그대로 쓰자면 중국민중의 당시 민도 탓도 크다. 마왕퇴 무덤은 가장 안에 목곽이 놓이고 그 밖에 숯을 채우고 다시 그 바깥쪽을 고령토로 다져 밀봉한 다음 위에 흙을 다져 쌓아 올려 만들어졌다. 이 무덤을 발굴했을 때 목곽주변에 쌓아 둔 막대한 양의 숯이 나왔는데, 너무 많은 양이 나와 이 숯은 박물관 창고에도 넣지 못하고 마당에 자리를 깔고 그 위에 쌓아 두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숯을 사람들이 광주리를 들고와 퍼가는 것이 아닌가! 왜 그런지 이유를 들어보니 마왕퇴 무덤에서 나온 이 숯이 사람들 병을 낫게 해준다는 소문이 돌고 .. 2023. 10. 28.
마왕퇴 (7): 호남의학원 마왕퇴 조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기관의 하나가 호남의학원이다. 의학조사 자체는 당시 중국 내 전국의 의과학 역량을 딸딸 긁어 모았다고 해도 좋은데, 그 중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한 곳이 湖南医学院이다. 이 학교는 2차대전 이전에는 상아의과대학湘雅医科大学이라 일컬은 대학으로 1914년 미국 비영리재단인 Yale-China Association에 의해 건립된 의대였다고 한다. 한때 "북중국은 협화의대, 남중국은 상아의대"라고 불릴 정도로 대륙의 의학계를 양분할 정도였다고 한다. 국공내전 후 1953년, 상아의대가 호남의학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마왕퇴 무덤이 발굴되던 당시에는 이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호남의학원이 마왕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마왕퇴에서 미라가 나왔는데 정부에서는 문화재.. 2023.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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