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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유물을 포기해서 성공한 전곡선사박물관의 역설

by taeshik.kim 2024.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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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선사박물관

 
물론 전곡선사박물관이 성공작인가 아닌가 하는 평가는 엇갈릴 줄로 안다만, 위선 저 박물관은 공립박물관 형태를 띠지만 참말로 묘해서

그 운영 주체는 애초 경기도였다가 훗날 경기도가 니들끼리 묵고 살아라 하고는 동댕이치니 지금은 경기도가 설립한 경기문화재단에 소속된 말하자면 경기도 기준으로는 2차 소속기관쯤 되지만 

내실 따져보면 골이 좀 때려서 그렇다고 관장 이하 그 소속원이 공무원인가 하면 민간인이다. 재단 소속이니 무슨 공무원이겠는가?

내가 이 이야기를 하고자 함은 아니고, 그 생존 본능이라는 측면에서 저것이 어떤 형태인가는 외부 세계에서는 아무도 관심 없다.

이는 전곡선사박물관이 외부에는 경기도립 공립박물관보다는 외려 그것이 소재하는 연천군립 공립박물관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거니와 

암튼 저 촌골짜기 북한을 바라보는 휴전선 지대에 자리한 저 박물관 공립박물관 중에서는 대표적인 성공작으로 평가되기에는 손색이 없다 보거니와, 이를 위해 진짜로 이한용을 필두로 그 종사자들이 뼈를 갈아넣고 있다. 

저 박물관이 성공작이라 평가된다면 그건 경기도 혜안과는 거리가 멀고 오직 열정 하나로 무장한 그 종사자들의 투사정신 하나가 있을 뿐이다. 
 

유럽 대륙 동굴벽화를 흉내낸 콘텐츠. 이것이 놀랍게도 성공으로 발판한다.

 
또 하나 그 내력을 고려하면서 우리가 정말로 심각히 고려해야 할 것은 이는 익히 내가 앞선 관련 글 [[국내 박물관 현황과 연혁] 보편주의를 선택한 전곡선사박물관] 에서 지적했듯이, 특수주의 포기에 따른 보편주의 채택이 결정적이었다. 

이 보편주의가 내가 볼 때는 두 가지로 발현했다 보는데, 하나는 독특한 건물 디자인, 다른 하나가 콘텐츠 구성이라 

이 건축물은 설립단계에서 말이 많아 외부 세계가 많은 주목을 했거니와 그 굼벵이 디자인은 이러나저러나 시선을 확 끄는 데는 대성공작으로 작동했다. 

아울러 콘텐츠 구성은 저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전곡선사라는 특정한 지점 특정한 문화를 과감히 포기하고 그것이 일부로 포괄되는 세계 선사문화 전반으로 확대했으니 이것이 성공작 다른 동인이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작금 한국 문화재업계 고고학계가 처한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는데, 이 문제는 그제 청주 학술대회 토론에서도 내가 잠깐 지적했듯이 고고학 전문 박물관이 성공하기 위한 절대의 조건이 나는 토기와 석기의 과감한 폐기에 있다고 말한다. 

토기 석기를 죽여야 박물관이 산다!!! 

이는 곧 박물관 전반 구성에서 실상 고고학 미술사 전공자라 분류할 사람은 실상 배제 축출되어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우리는 마주하게 한다. 
 

마네킹으로 성공했다.

 
그 털보 관장을 여러분은 고고학도로 보는가? 이건 이한용 본인도 한사코 내가 구석기 전문고고학도라 보겠지만 천만에!

내가 보는 이한용은 고고학도가 아니다. 현장에서 구른 현장 고고학도요, 언제나 박물관은 어찌해야 사는지를 고민하는 박물관학도지 그는 고고학도가 아니다. 

그가 돌을 깨서 석기를 만든다 해서 고고학도? 웃기는 소리다. 

오늘날 그를 만든 데 구석기가 일정부문 받침했겠지만 이한용은 고고학도 아니다.

이는 내 주변 친한 친구급 지인들이 다 그래서 김충배가 무슨 고고학도 신석기학도인가?

그는 토지공사에서 잔뼈가 굵은 건설토목 업자이며 그 과정에서 문화재 행정 일반을 담당한 문화재 행정가이며, 박물관에 깊이 간여한, 그렇기에 전시 전문가로 분류할 만한 사람이다. 

내 주변 친구 중에 오직 정통고고학도로는 이영덕 한 명이 남았지만, 이 친구도 업자로 전향해서 지금은 돈 버는 데 혈안이 된 사업가다. 곧 문화재 사업가라는 말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학예직 그네들 절규를 80%는 동의하나, 그렇다 해서 내가 그네들 배출 통로로 규정하는 대학 관련학과 나오고 석박사 관련 학위 있어야 한다는 제한 나는 눈꼽만큼도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고고학 역사학 관련 학과를 나왔다 해서 내가 박물관 전문가 문화재전문가? 까는 소리다.

학력 전공 관계없이 오직 열정만 있을 뿐이다. 

젠장 또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전곡선사박물관이 왜 성공작으로 평가되는가?

간단히 말해 고고학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고고학을 포기했는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석기를 갖다 놓고 싶어도 석기가 없다! 왜? 국가가 다 강탈해 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적 자체가 볼품이 있는가?

우리 단군할배 참말로 원망스러워 저짝 프랑스 스페인 구석기는 같은 구석기인데 동굴 천연벽화도 남겨주고 해서 그 자체 가시성이 다대해 그걸로 장사를 해먹어도 충분한데 우리쪽 구석기는?

볼 게 암것도 없다. 

동굴벽화? 그 딴 게 어딨어? 돌? 그딴 걸 누가 봐? 젠장 박물관 갈 때마다 그 첫머리 석기만 보면 얼굴만 찡그리게 된다. 석기란 본래 그런 것이다.

짱돌 너흰 좋니? 그렇게 짱돌이 좋니? 짱돌? 그것만 보면 시위가 생각나서 몸서리가 쳐진다. 

보여줄 만한 그럴 듯한 유물 한 점 없어, 그렇다고 보여줄 경관이 뛰어난 것도 아니니 이런 빈껍데기 박물관이 보여주기 위해서는 결국 

1. 박물관 건물
2. 보편주의 콘텐츠 
 
이  두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성공했다. 

박물관이 석기를 포기하니 성공했고, 박물관이 특수성을 포기하니 성공했다. 

나는 저 박물관이 국박이 보유한 유물 다 넘겨받았다면 폭망했으리라 본다.

보나마나 돌삐 잔뜩 갖다 놓은 대학박물관 같은 전시를 했을 테니 말이다.

청주선사박물관? 

소로리? 볍씨? 웃기는 소리다. 볍씨고 소로리고 뭐고 나발이고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 

이 점을 나는 토론에서 간단히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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