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 혹 기억하는 분 더러 계시리라.
2017년 7월 무렵, 중국에서 국영 통신사인 신화사가 공개했다.
댐 건설로 수몰된 600년 전 명나라 시대 마애불이 저 무렵 물이 빠지면서 하필 머리만 노출되었을 때
포착한 장면 중 하나로
저 순간이 주는 오묘함 때문에 독자 시선을 사로잡지 않았나 기억한다.
배경은 강소성江西省 무주시抚州市 남성현南城县 홍문수고洪门水库라는 데다.
홍수 방지를 주된 목적으로 만든 댐 혹은 저수지로 생성된 호수인데 일명 취선호醉仙湖라 하거니와
1958년에 들어서면서 저런 마애불을 비롯한 주변 일대가 침수됐다.
이천黎川과 남성南城 두 현에 걸쳐 40여 평방킬로미터가 수몰지구였고 총저수량은 대략 12억 입방미터인 호수다.
그 안에는 크고작은 섬이 1천86곳에 이른다.
이런 데가 2016년 11월 댐 보수를 위해 물을 뺀 모양이라 그때 저 마애불이 노출된 것이다.
저가 드러나자 국가문물국国家文物局 수중문화유산보호센터[水下文化遗产保护中心]가 나서서 조사를 벌인 듯 하다.
중국이나 우리나 1950년대는 일단 먹고 사는 일, 아니 더 정확히는 살아남은 일이 지상과제였던 시절이다.
저때 댐 막는다고 무슨 문화재 사전 분포조사를 했겠는가? 그건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일단 홍수에서 살아남아야 했으며 그래서 댐을 건설할수밖에 없었다.
저런 장면이 우리로서야 특히나 반구대 암각화랑 맞물려 여러 상념이 없지는 않을 줄로 안다.
반구대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가 왜 그리 자맥질하는 그 유산을 안달복달하며 수중에서 구출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야 하는지를 나는 매양 의심한다.
툭하면 그림이 없어졌네마네 훼손이 가속화하네 마네 하는 강박에서 이제 벗어나야지 않겠는가?
자맥질이 어때서?
그 또한 이 시대가 낳은 역사의 한 장면이요 어쩌면 필연이었다.
그것이 발견되기 전 그 하류 지점에 막은 사연댐이 준 혜택 또한 고려해야 한다.
문화재 또한 그런 배려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문화재냐 물이냐를 선택하라면 나는 당연 후자다. 물론 양자택일일 때 말이다.
http://m.xinhuanet.com/2017-08/04/c_112142947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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