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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근巨根2

[대물大物 이야기] 거근巨根의 창시자 노애嫪毐 (2) 도로아미타불 될 뻔한 여불위 진秦 소왕昭王은 재위 50년에 왕기王齮라는 사람을 사령관으로 삼아 조趙나라 서울 한단邯鄲을 포위 공격했다. 이에 다급해진 조나라에서는 진나라 인질로 한단에서 생활하던 자조子楚를 죽여 복수하고자 했다. 더 다급해진 쪽은 여불위였다. 공들인 노력이 하루아침에 거품이 될 것을 우려한 그는 다시금 뇌물을 동원해서 조나라 관리들을 구워 삶아 겨우 자초를 탈출케 하고는 진나라로 도망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자초나 그의 후견인 여불위한테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특히 여불위의 경우는 하마터면 개털될 뻔한 투자를 톡톡히 본전 뽑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단에 남은 자초의 처자식까지 안전을 보장케 하는 데 성공하고 자초와 함께 진나라로 들어간 여불위는 마침내 자초를 태자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 대목을 사기 여불위.. 2024. 1. 17.
[대물大物 이야기] 거근巨根의 창시자 노애嫪毐 (1) 장사꾼 여불위 중국이 기나긴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서쪽 변방 진秦이 통일왕조를 이룩하는 데 터전을 닦은 이는 소양왕昭襄王 혹은 약칭 소昭王으로 일컫는 군주라, 그가 닦은 터전을 토대로 시황제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분열한 중국 대륙을 하나로 통일했다. 소양왕은 무엇보다 재위기간이 길어 기원 306년에 보위를 이어 기원전 251년에 사망했으니, 반세기를 넘는 기간 안정된 국정을 운영했다고 평가된다. 한데 재위기간이 길어지면서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으니 후계 문제였다. 태자가 있었지만 그의 재위 40년째에 그만 죽어버리니 그 다음 아들 안국군安國君을 태자로 봉했다. 이 안국군이 훗날 아버지 뒤를 이어 왕이 되니 효문왕孝文王이라 일컫는 이다. 이 안국군한테는 이미 아들이 스무 명이 넘게 있었다. 한 여자한테서 저리 많은 아들을 .. 2024.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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