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18435

거란문자로 적고 한자로 번역한 여진 비석 #대금황제도통경략낭군행기 大金皇弟都統經略郞君行記 탁본이 낭군행기는 금나라 황제의 동생인 낭군郞君의 여행 기록을 담은 비석으로, 원래 당나라 측천무후의 비석이었으나 금나라 시기에 거란 문자와 한자가 함께 새겨졌습니다.거란문자는 920년부터 1191년까지 거란어를 기록하기 위해 사용된 문자로, 한자의 형태를 빌려 만든 한자 계통 문자입니다. 이 비석은 거란 소자와 한문 번역문이 함께 기록되어 있어 거란 문장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인명, 지명, 관직명 등을 포함해 거란어 해석에 도움을 줍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몽골어를 통해 거란어를 해독하고 있으며,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 이상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소개다. 2025. 2. 19.
[베로나에서 생긴 일] (1) 두오모도 제낀 The world's oldest library 줄리엣 하우스를 뒤로하고는 뚜벅뚜벅 걸어 베로나 구심 중앙을 관통해 북상했다.아디제 강이 감돌아 흐르면서 자연 해자 구실을 하는 그 도심 꼭지점 부분, 그러니깐 하늘로 치면 북극성 자리에 정좌한 이가 Complesso del Duomo di Verona콤플레소 델 두오오 디 베로나, https://maps.app.goo.gl/zijyEWRh3szqWu3Z9 Complesso del Duomo di Verona · Verona, Province of Veronawww.google.com곧 이곳 베로나 모든 성당 교화 중에서도 왕초 노릇하는 데라 이곳을 잡았으니아디제 강과 인접한 데다 그에서 강을 건너 북쪽으로 도시가 확장하는 구심점이 되는 피에트라 다리Ponte Pietra폰테 피에트라https://map.. 2025. 2. 19.
생몰년도 모르는 너무나 우뚝한 셀렙 어숙권 조선 중기를 살다간 셀렙이지만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유명인사가 있다. 각종 증언이 풍부하게 남았고, 더구나 엄청시리 유명한 저술도 남겼으며, 이리저리 인구에 회자한 명성에 비추어 보아 도저히 이럴 수가 없다. 어숙권魚叔權. 위선 성씨가 참말로 묘해서 희성이다. 거기다 서얼이라 하니, 더했겠다 싶기는 하다. 이런 서얼이 기성에 침투해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가 외국어였으니, 하긴 뭐 구한말 이래 대한민국 시대 초중기에 이르기까지 영어 하나 잘하면 그걸로 날고 기었으니, 그 영어가 중국어인 시절, 어숙권은 이걸로 그런 대로 그에게 주어진 운명을 개척하며 그런대로 떵떵거리며 살다갔다. 그의 족적을 각종 인명사전에서 추려보면 1525년, 중종 20년에 그 유명한 권신 남곤南袞이 빽을 써서 설치한 이.. 2025. 2. 19.
간도 이주민처럼 숨어 든 위만 위만이 연나라에서 도망쳐 그 무리와 함께 처음 숨어든 땅은한나라가 지키는 요새 바깥은 공지空地였다. 그리고 이 공지는 고조선 땅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는 고조선과 한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공지였다는 말이다. 고조선으로서는 공지에 사는 위만을 서쪽 변경을 지키는 박사로 임명했다니고조선이 볼 때 그 땅은 공지가 아니라 자기들 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 땅은 비워둔 땅이었다. 관념상 누구의 땅이건 간에 일단 비운다는 말이다. 청나라 때 유조변柳條邊 바깥 땅도 관념상으로는 청나라 땅이었지만 자기네들 땅을 비워 공지로 만든 것이다. DMZ가 오늘날 한국과 북한 사이에만 있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겠다. 위만이 건너와 살았다는 한나라 요새 바깥의 공지는 아마도 청나라 때 유조변 바깥에서 압록강 북쪽에 설정된 공.. 2025. 2. 19.
심심하면 관짝에서 불려나온 양사언 1546년(명종 1) 문과에 급제하여 대동승大同丞을 거쳐 삼등三登(평안남도 강동 지역)·함흥咸興·평창平昌·강릉江陵·회양淮陽·안변安邊·철원鐵原 등 여덟 고을 수령을 지냈다. 자연을 즐겨 회양의 군수로 있을 때는 금강산에 자주 가서 경치를 감상했다. 만폭동萬瀑洞 바위에 ‘蓬萊楓岳元化洞天(봉래풍악원화동천)’이라 글씨를 새겼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안변 군수로 있을 때는 백성을 잘 보살펴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品階를 받았고, 북쪽의 병란兵亂을 미리 예측하고 말과 식량을 많이 비축해 위급함에 대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릉智陵(이성계 증조부의 묘)에 화재가 일어나자 책임을 지고 해서海西(황해도의 다른 이름)로 귀양을 갔다. 2년 뒤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세상을 떠났다. 이상은 한민족대백과사전 양사언 관련 .. 2025. 2. 19.
국경의 변화와 전염병 근대국가는 국경에서의 체계적 검역을 특징으로 한다. 이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 침탈도 국경선에서의 검역관리라는 모습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일본도 구한말 조선에 대해 검역관리를 이유로 국권침탈을 시작했고 조선이나 중국이나 모두 개항 이후 가장 서두른 것이 바로 검역이었다. 언젠가 김 단장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근대국가의 전환은 곧 국경선 모습의 변화이기도 하다. 전근대시대 국가간 경계가 꼭 이렇다는 보장은 할 수 없겠지만 이 당시 국가간 경계는 공지를 두어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본다. 지금처럼 국경선이 국가간 영토가 맞닿는 선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 사이에는 공지를 둔다는 것이다.이런 국가간 국경선에 두는 공지의 기원은 한국사에서는 멀리 고조선시대에도 볼 수 있.. 2025. 2. 1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