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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522

치카자와쇼텐, 조선학총서를 내다(3) 1932년, 치카자와쇼텐에서 야심차게 내건 출판 프로젝트가 있었으니 바로 '조선학총서'다. 조선을 연구하는 데에 필요한 고문헌을 연활자본으로 인쇄 발간하는 것이었는데, 기실 비슷한 총서류 발간은 1910년대부터 한일 양쪽에서 적잖이 있었다. 이는 존경하는 노경희 선생님이 깊이 연구하신 바 있어 여기선 생략하지만, 치카자와쇼텐도 차별화를 위해 믿는 구석이 없지 않았다. 그건 바로 경성제대 사학과 교수인 이마니시 류 금서룡今西龍(1875-1932)의 대상 선정과 직접 교정이었다. 사실상 '조선학총서' 자체가 이마니시의 기획이었던 것 같은데, 그에 관해선 후술하기로 하고..어쨌건 1932년 조선학총서 제1권이 세상에 나온다. 제1권의 영광을 안은 건 서긍(1091-1153)의 《선화봉사고려도경》이었다. 그 중.. 2025. 7. 10.
치카자와쇼텐, 조선학총서를 내다(2) 그 유명한 세키노 타다시의 , 아유카이 후사노신의 시리즈가 1930년대 경성 장곡천정(하세가와쵸, 지금의 서울 소공동) 74번지에 있던 근택서점, 곧 치카자와쇼텐에서 나왔다. 그 광고지를 보면 이 책들은 그냥 나온 것도 아니고 7원, 1원 80전~6원 50전(우송료 별도)이란 거액을 붙인 호화판으로 나왔다. 일제 때는 금본위제도라 해서 화폐가치가 금을 기준으로 매겨졌다. 거칠게 말하면 이 시절 돈은 은행에서 금과 바꿀 수 있는 증서였다고나 할까. 그 법정가치는 금 1돈에 5원이었다. 지금 금값으로 치면 1원이 대강 10만원 정도인 셈. 세키노의 는 70만원+a짜리였다.하지만 그때, 1920~30년대 기준에서 7원의 실질가치는 도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1924년 발표된 현진건의 을 보면 김첨지가 '운수 .. 2025. 7. 9.
치카자와쇼텐, 조선학총서를 내다(1) 해방의 기쁨이 불안과 초조함으로 바뀌던 1946년 5월,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터졌다. 이른바 '조선정판사 위폐제조사건'. 조선공산당에서 당 예산을 조달하고 38선 이남의 경제를 교란할 목적으로 1,200만원어치 위조지폐를 만들었다는 미군정 측의 공식 발표가 있었지만, 공산당 측은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 말고는 어떤 증거도 없는 날조극이라고 맞섰다.훗날의 연구에 따르면 진실은 후자에 가까웠지만, 어쨌건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군정은 공산당 계열 인사를 철저히 탄압하기 시작했다. 조선 땅에 불어닥친 냉전의 시작이었다.그런데 그 사건의 발단이 된 '조선정판사'가 어떤 곳인지 찾아보면 꽤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만나게 된다. 지금의 서울 중구 소공동 74번지(사라진 지번인데, 지금의 웨스틴조선호텔 남.. 2025. 7. 8.
제주 조천공동묘지에 만난 김시숙과 김형식 근대 제주 사회의 '거물'이자 항일운동가, 교육자였던 두 인물을 제주 조천공동묘지에서 만났다. 장마가 가까워서 수풀이 우거지는 바람에 이리저리 긁히고 넘어져 자빠지기도 했지만, 간 보람은 있었다. "진정한 열부라면 충실한 반역자 무리일 것"이란 여성 독립운동가의 묘비명을 읽어보는 경험을 아무데서나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그 분, 김시숙의 산소는 너무나 초라하였다. 그 앞 소나무가 너무나 굵고 커서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그 옆 김형식(김시숙에겐 사촌동생)의 산소는 후손이 벌초를 다녀갔는지 제법 멀쑤룩하였다. 일본 유학을 다녀왔고 시문으로 이름났던 지식인인 그는 사실 큰 주목을 받지 못해, 그 동생 송산 김명식(1891-1943)이 기자와 주필을 지내며 항일적 활동을 하는 등 워낙 잘 알려져 가.. 2025. 6. 24.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이 마련한 기이한 특별전 독일인이 수집하고 안봉근이 정리한 제주민속자료들 서울에서, 용인에서, 도쿄에서 거대한 특별전들이 여럿 열리고 있습니다. 거기 다녀온 분들 글도 적잖이 올라옵니다. 당연히 가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런저런 사정상 날을 잡지 않으면 육지 나들이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육지에서 제주로 오시기도 어렵죠. 특히나 이런 장마철에는요.앞으로도 썩 보기 드문 전시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어 다녀왔습니다. 독일 동남부 작센 지역 드레스덴민족학박물관이 소장한 제주 민속품이 근 100년만에 고향을 찾았습니다.그래서 특별전 제목도 입니다.19세기 말~20세기 초 아시아는 유럽과 미국 인류학자나 민속학자에겐 황금의 땅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의 눈과 손으로, 아시아 사람들의 전통적 생활문화유산이 바.. 2025. 6. 24.
호불 정영호의 기와 탁본 때는 바야흐로 1981년 동짓달,미술사학자 호불 정영호(1934-2017) 선생께서 강원도 영월에 계셨다.그곳 태화산이라는 산에 삼국시대 산성이 있었는데, 답사 중이셨는지 발굴 중이셨는지, 거기서 '벼슬 관'자 명문이 든 수키와 하나를 구하셨다.이걸 선생은 정성들여 탁본하고, 그 내력을 적어 이듬해인 1982년, 이 아무개 선생(이름은 밝히지 않는다)에게 선물한다. 한동안 액자로 되어 있었는데, 비를 맞았는지 아래쪽이 습기를 잔뜩 먹었다.그러면서 액자에서도 뜯겼고, 언제부턴지 이리저리 떠돌다가 어느 헌책방에 들어왔다.그 주인이 인터넷에 사진을 올려두었는데, 사가는 사람이 없었다.그러다 내 눈에 띄었다.헐값에 사서 배송을 받아보니 탁본도 나쁘지 않고, 글씨도 좋았으며, 의미도 있었다.그래서 표구를 맡겨 액.. 2025.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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