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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신화3

자색紫色, 간색間色에서 絶大의 색깔로 - 지상의 천황天皇을 표방한 시조始祖들 투고 논문이 공간됐다. 이건 순전히 이 대학 역사학과 임승휘 교수한테 코가 꿴 결과물이다. 내가 백수가 되자 그가 다른 어떤 교수 분과 더불어 나를 강좌에 불러주었다. 고기까지 얻어 먹었으니 빚을 진 셈이다. 갚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임 교수가 느닷없이 전화해서는 "버릴 논문 하나 없냐?"고 묻는데 어찌 거절하리오? 딴데 싣기는 그렇고, 어중간한 거 아무거나 하나 달라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내 이름 달고 나가는 거, 그리고 잡지가 등재지건 아니건 그것이 나한테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나로서는 그런대로 괜찮다 생각하는 논문 집어던졌다. (2016. 2. 23) *** "다른 어떤 교수 분"이란 임 교수와 같은 선문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유춘동이다. .. 2023. 2. 23.
신이神異의 창출, 역사조작을 거부한 유송劉宋 창건주 유유劉裕 유유劉裕(363~422)는 동진東晉의 전쟁 영웅이다. 특히 권신 환현桓玄(369~404)이 동진 황실을 무너뜨리고 403년에는 스스로 황제라 일컫고 국호를 초楚라 하자, 그 이듬해 유의劉毅와 더불어 경구京口에서 거병하여 토벌한 공로로 신하로는 더 오를 데가 없는 구석九錫을 받았다. 한번 무너진 왕조는 재건하기는 했지만, 이미 권위는 실추할 대로 실추했으며, 권력은 점점 유유한테로 기울어졌지만, 어찌된 셈인지, 유유는 본색을 숨기며 17년이나 지내다가 58살이나 된 공제恭帝 사마덕문司馬德文 원희元熙 2년(420)에 접어들어 이해 정월에야 집권야욕을 노골화하니, 이때 송왕宋王에 책봉되어 그 본부 수양壽陽에 주둔 중이던 유유는 신하들을 불러다가 주연을 베풀고는 이렇게 운을 띄웠으니 "환현이 찬위篡位하면서 천명.. 2021. 2. 15.
김수로는 왜 자승紫繩을 타고 강림했는가?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에는 고려 문종(文宗) 때인 대강(大康) 연간(1075~1084)에 금관지주사(金官知州事)의 문인이 찬했다는 《가락국기(駕洛國記)》에서 절록했다는 가야 건국신화를 채록했거니와, 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후한 세조(世祖)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18년 임인(AD 42) 3월 계욕일(禊浴日)에 그들(9干)이 사는 북쪽 구지(龜旨)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났다. 200~300명 정도가 이곳에 모이자 사람 소리가 들렸는데 그 형체는 보이지 않은 채 소리만 났다. (중략)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가?” 하니 구간(九干)이 대답하기를 “구지입니다”고 했다. “皇天이 나에게 명하시길, 이곳에 와서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려온 것이다. .. 2018.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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