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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3

요물과도 같은 돈 혹은 월급 이야기 내가 없이 자라며 학교를 다녔다 해서, 내가 거창한 계급투쟁의식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어쩌면 체제 순응주의자라고도 할 만한데, 그 체제 안에서 내가 획득할 수 있는 최대치 정도만 적당히 먹고 살자 이런 주의에 나는 가깝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무렵만 해도, 요즘과는 사정이 많이 달라, 썩 만족은 하지 못한다 해도 그런 대로 이름 있는 대기업은 어느 정도 들어갈 만한 환경이었으니, 그럼에도 나는 개중에서도 나은 편이라는 영문과 출신이라 하지만 문과대라는 한계가 커서 취업 선택의 폭이 생각보다는 굉장히 좁았다. 졸업을 앞둔 시점에 이곳저곳에서 날아드는 신입사원 모집 소식에 몇 군데는 날림으로 넣어 합격통지서를 받았지만, 대기업이라고 할 만하는 데는 딱 한 군데 지원했으니, 현대자동차였다. 내 기억에 이 .. 2023. 9. 11.
월급날이 지났지만 통장은 그저 정거장일 뿐이런가 2021. 3. 27.
조선시대 공무원 봉급명세서 이조 또는 병조에서 발급한 이런 녹패祿牌를 가지고 광흥창廣興倉에 가서 녹봉을 수령했다. 장성 행주기씨 종가 소유로 현재는 공공기관에 이를 포함한 집안 고문서 일체가 기탁된 상태다. *** 이하 김태식 補 문서에 동치同治 6년이라 했으니 1867년에 작성된 것이다. 권지승문원부정자 기양연權知承文院副正字 奇陽衍 앞으로 발급한 것이다. 문서 네모칸마다 정묘丁卯 8월 이래 동년 12월까지 달마다 표시된 것으로 보아 이 문서는 월급 형식으로 녹봉을 수령한 것이 아닌가 하며, 한번만 써먹고 버린 증서가 아닌듯 하다. 상평통보 운운하고 조선후기 상업경제 운운하나 헛소리다. 19세기 중반이 되도록 현물로 월급 수령했다. 입금? 그런 게 있을 리 있겠는가? 은행도 없고 캐피탈금융도 없었다. 2020.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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