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사 쪽에선 말이 많았을 법한데 큰 흐름을 정리하면
동아시아 문화권에선 근대 개막 직전까지 유일하게 낙오한 데가 한반도라
우리네 조상은 죽어나사나 계우 청화백자 흉내나 내다 그걸 컬러풀이라 하고 말았으니
그게 20세기 21세기 세계사 관점에서 보면 컬러풀하달 수는 없다.
상감청자를 상찬하나 것도 실상 비색이라는 단색 계통을 벗어날 수 없고 청화백자도 흰바탕에 청색 꼴랑 하나 썼을 뿐이다.
일본 역시 비슷한 길을 걷다 임란 이후에 급변하는데 우리가 일본하면 누구나 상상하는 그 알록달록은 에도시대 유풍이다.
중국은 이 점에서 역시 빠르다 하지만 이 점에서 아무래도 당삼채가 획기를 이룬다 봐야 한다.
이 당삼채가 등장함으로 비로소 중국도자도 컬러풀 원더풀 시대로 접어들며 명청대 와서는 그 극성을 구가한다.
당삼채 이전 중국 도자가 화려한 듯해도 어찌 훗날의 그 칼러풀과 비견하겠는가?
장식만 화려할 뿐 이쪽도 단색 계통이 주종이었다.
무엇이 이런 흐름을 추동했을까?
동아시아 삼국 중에선 오직 조선만이 탈락했고
그 조선만이 오직 쇄국을 고수하며 동아시아를 벗어난 그 외부세계와는 시종일관 단절한 삶을 살았다는 데 나는 해답이 있다고 본다.
왜 알록달록으로 갔는가?
물론 도자를 벗어난 옷감 같은 패션은 달라지지만 도자한테 이 알록달록은 결코 동아시아 내부 수요가 아니었다.
외부가 그런 수요를 압박했고 그런 압박에 내부가 응전해 반응한 것이 알록달록 도자다.
나는 동아시아 도자사는 프리 알록달록 시대와 포스트 알록달록 시대로 분기해야 한다고 본다.
그만큼 이 알록달록 도자는 그릇을 넘는 그 무엇인가의 인류사 획기다.
더 간단히 말한다.
유럽 시장을 만나면서 동아시아 도자 시장은 돌변했다.
조선백자? 고려청자?
웃기고 있네.
지금이야 한류바람 타고 한국위상이 높아져 골동시장에서 값이 올라갔지 그딴 거 저들한테는 개밥그릇도 쓰지 않을 물건이다.
시대가 변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지 저딴 건 결코 동시대 유럽이 쳐다보는 상품이 아니었다.
유럽은 이집트 그리스 로마 이래 시종하고 색감은 알록달록하며 강렬한 원색 계통을 하나가 아닌 여러 개로 버무리는 문화다.
단색 계통을 시종 고집한 동아시아와는 시종해서 흐름이 달랐다.
이 점에서 거의 유일한 예외가 종교미술인데 불교 도교는 그 반란이었다.
하지만 이 종교예술도 동시대 유럽쪽 알록달록 기독시장과 비교하면 여전히 색감 계열에선 다양성이 크지 못해 폭이 좁다.
얘기가 길어져서 끝낸다.
동아시아가 유럽과 만나고 알록달록을 요청하는 그네들 수요에 부응하면서 동아시아 도자시장도 급변했다.
더 간단히 말해 수출이 동아시아 도자를 바꿨다.
이 점에서 그 시원을 연 당삼채는 내 아무리 봐도 서역 기호를 반영한 동아시아 도자사의 돌발 혹은 쿠데타라는 점을 상기했음 싶다.
나아가 동아시아를 연원으로 삼는 이 새로운 도자 세상은 그것을 요구한 유럽 도자 시장도 일대 혁명을 일으키는데
중국발 일본발 유럽식 기호화한 도자는 유럽 도자 세계 자체도 근간을 흔든 혁명의 씨앗을 뿌린다.
왜 조선만 유독 저 흐름에서 일탈했는가?
유럽과 접촉이 없어서다. 외부 압박이 없어서다.
도자사 하는 사람든한테는 혹 당연한 이야기, 혹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어떤 미친 놈이 막 던지는 이야기라 치부하면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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