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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권력, 특히 대통령과 고고학(1) 노무현과 유해 발굴

by taeshik.kim 2023.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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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국가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보상하는 것, 이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2007년 현충일을 하루 앞둔 6월 5일, 당시 대통령 노무현은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 인근에서 진행 중인 6.25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찾았다. 

이를 전하는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이것이 군 통수권자가 6.25전사자 유해발굴 현장 첫 방문이라 타전했지만, 팩트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니지만, 문제가 조금 있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정부 혹은 국가 주도 유해 발굴을 시작한지 저때는 7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때라, 국군 통수권자 첫 방문 운운하기에는 역사가 너무 일천했다. 

그가 찾은 만세교리 인근 지역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첫날 북한군 기습남침에 맞서다 장렬히 전사한 국군 유해 10여 구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던 곳이다.
 

철모를 살피는 노무현

 
이런 조사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라는 조직이 전담했다. 그의 방문 하루 전 조사를 시작한 이들은 첫날 벌써 3구의 유해를 찾았다. 아마 대통령 방문에 맞추어 사전에 유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래야 언론을 통한 홍보에도 유리하니깐 말이다. 

그의 이날 방문에는 당시 전투에 참가한 퇴역군인들과 이 전투에서 사망한 군인 자녀들도 함께했다. 

이 일을 두고 당시 국방부는 "대통령의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 방문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호국용사들을 다시는 이름없는 불모지에 버려두지 않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에 앞서 국방부는 같은해 1월 유해발굴 전문부대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을 공식 창설하고는 그해에만 281구에 이르는 전사자 유해를 찾아내는 개가를 냈다. 

그렇다면 그 이전은? 이 유해발굴감식단은 그 역사를 2000년 4월에 시작한다. 그해가 마침 6.25발발 50주년이 되는 해라, 그 기념사업으로 시작한 것인데, 노통의 방문 이전까지 국군 유해 1천376구와 유엔군 유해 8구 등을 찾아낸 것이다.

이 국방부 유해발굴 역사 또한 한국고고학에서는 대서특필해야 하지만, 이 부문에 대한 고고학의 정리는 전연 없다. 

그럼에도 저 유해 발굴에는 초창기 이래, 고고학이 이런저런 연결고리를 삼아 주로 개인 자격이기는 하지만 일부 고고학도가 간여하기는 했으니, 그 조직에 현재도 고고학 전문가가 들어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호 꼿꼿 장수가 보인다.

 
예컨대 그 창설 혹은 초창기 운영에 충북대 교수 박선주가 적지 않은 공헌을 했으니, 이에 대한 조명도 있어야 한다. 이것도 모른 일부 고고학도가 저런 유해 장면을 보면서 고고학 기법을 도입해야 하니 마니 하는 모습도 보았는데, 그런 말 하던 시점에 이미 고고학도들이 참여해 유해 발굴을 하고 있었다. 

저 유해발굴은 국방 정책에 고고학이 공식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신호탄으로 봐야 한다. 물론 2000년 이전에도 국립문화재연구소를 필두로 하는 일보 다른 국가기관, 혹은 육사 교수로 대령으로 예편한 군사학도 이재라는 개인이 고군분투하기는 했고, 특히 이재의 경우 우후죽순하는 매장문화재 전문 발굴단 시대에 아예 이름까지 국방문화재연구원을 내걸고는 휴전선 비무장 지대 일대를 중심으로 적지 않은 조사 성과를 냈다. 

이런 점들도 반드시 한국고고학사에서는 대서특필해야 한다. 

그렇다면 권력이 왜 중요한가? 

그 무렵에 이미 제도 정착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노무현의 유해 발굴현장 방문은 국방과 고고학 결합을 돌릴 수 없는 제도로서 확립한 점에서 찾아야 한다.
 

 
대통령의 방문은 단순히 어떤 현장을 찾았다는 것으로 끝날 수는 없다. 그것은 그 사업의 공고화를 의미하며, 이 공고화는 제도로 발판을 굳힘을 의미한다. 

특히 고고학 개념이 약할 수밖에 없는 국방에 여전히 부족하기는 하나, 고고학을 심었으며, 노무현의 현장 방문은 그것을 더욱 튼튼히 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왜 의미가 없겠는가? 

물론 그 감식단 운영을 둘러싼 이런저런 마찰이라든가 조직개편 등등의 문제는 또 다른 고찰을 요하지만, 아무튼 그래서 고고학은 저와 같은 최고권력자의 관심 혹은 단순한 방문 하나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얻는 부수효과를 얻는다. 

문제는 역대 최고 권력자의 문화재, 혹은 범위를 더욱 좁혀 고고학에의 관심이 현격히 적었다는 데 있다.

이 부문에서도 예외가 딱 한 명 있으니, 물론 장기집권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한다 해도, 역시 박정희를 따를 사람은 없다. 박정희와 고고학에 얽힌 이야기는 하도 여러 번 다뤘고, 나 역시 이곳저곳에 싸지른 글이 너무 많아 생략한다. 


***

위에서 잠깐 논급한 박선주는 한국고고학이 대서특필해야 하는 국방고고학 보훈고고학 창립자로서 2008년 뤼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도 관여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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