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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MB 영접하러 고령까지 달려간 이건무(3) 불과 30m

by taeshik.kim 2023.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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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 본향인 고령, 개중에서도 그 시대를 호령한 부자들이 묻힌 지산동고분군 이라는 묘지 기슭에 자리잡은 대가야박물관이다. 왕릉 전시관이라 표식한 데가 이곳의 상징과도 같은 지산동44호분 모형전시관이랄까 하는 데다. 

내가 워낙 저짝에 간지 오래되어 놔서 혼동이 있을 수 있음을 혜랑하시되, 암튼 저 박물관 앞마당 오른쪽 붉은 색으로 표식한 지점에도 무덤이 있음을 보거니와, 저것이 지산동 73~75호분이라는 데일 것이다.

혹 내가 잘못 짚었다 해도 그 근처임은 하늘이 두 쪽나도 변함이 없으니 내가 하고자 하는 말 대의를 크게 훼손할 수는 없다. 

저길 팠다. 언제? '대가야권 광역관광개발' 전략을 짜고자 MB가 대가야박물관을 방문한 그 무렵에 한창 파는 중이었다. 아니, 그가 찾았을 때는 실상 발굴 막바치로 치닫고 있었다. 
 

MB 방문 한 달 전인 2013년 4월 10일 현장을 찾으니 조영현 원장이 발굴을 진두지휘하는 중이었다.

 
 
내 기억에는 73~75호분 세 군데 모두를 판 것은 아닌 듯하고 73호분과 75호분 두 무덤을 파는 중이었을 것이다. 저 방문이 있기 한달 남짓한 시점인 4월 10일, 내가 현장을 찾았으니, 르포식으로 발굴현장을 소개한 당시 내 기사 <1천600년만에 속살 드러낸 대가야 고분> 1600년만의 속살 대가야 고분 을 보면 

조사는 대동문화재연구원이 수행하는 중이었고, 현장은 그 원장 조영현이 진두지휘하는 중이었다. 저 기사 첫 대목이 이렇다. 

 
(고령=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0일, 경북 고령에는 오전 10시 무렵을 넘어서자 봄비 치고는 제법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가야 시대 대형 봉토분 수십 기가 높은 능선 정상을 따라 병풍처럼 두른 계곡 안쪽을 차지한 대가야박물관. 그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 바로 오른쪽 능선이 끝나는 두 지점이 경북 고령군 의뢰로 대동문화연구원(원장 조영현)이 한창 고고학 발굴 조사를 진행 중인 곳이다. 

하지만 이날은 비 때문에 발굴장에 유적 보호를 위한 거대한 보호천막이 설치돼 있었다. 이 중 한 곳은 이런 악천후에도 발굴현장을 공개하기 위해 비닐하우스 식 천막 시설을 쳐 놓았다. 

 

지산동 73호분 주곽. 나 역시 이런 현장을 상시 개방하는 꿈을 꿨다.

 
MB가 대가야박물관을 찾았을 무렵 역시 마침 발굴 현장을 제대로 볼 만한 때라, 또 대통령이 온다는데, 고령군과 대가야박물관 또한 그에 대비해 한창 꽃단장을 하고는 대통령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저 입구에서 내려 걸어서 박물관을 들어가며, MB는 애초 짠 일정대로라면 잠깐 저 박물관 현장을 돌아보고는 관계자들을 격려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고령군은 이 사업의 또 한 가지를 노렸다. 저 발굴현장의 현장박물관화가 그것이었다. 

이곳까지 왕림해준 대통령이 선물 하나는 던져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현장을 찾은 대통령은 당연히 와 이런 데가 있었네, 이런 건 잘 관리해야겠소 판에 박힌 딱 한 마디만 해주면 모든 것이 끝나는 문제였다. 

대통령이 다녀간 데니, 이른바 높은 사람들은 이후 줄지어 찾았을 테고, 그리 되었다면 저 발굴현장은 지금 저 지도에서 보이는 발굴 끝내고는 덩그러니 다시 묻고 잔디밭 만들 것이 아니라, 현장을 노출한 현장 박물관, 무덤 내부 구조까지 관람객들이 들여다 보는 그런 현장 박물관으로 변했을 것이다. 
 

73호분 발굴 현장. 대동문화재연구원 제공

 
하지만, 그 박물관 마당을 도열한 주민들에 둘러싸여, 일일이 악수하며, 오모 대통령님 잘 왔네, 아이고 할매 여긴 우짠 일이오 내가 이맹박이오 하는 환대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는 바람에, 그 지점에서 불과 30m 떨어진 저 발굴현장 방문을 생략해 버리고 MB는 휙 하니 박물관 내부로 향했던 것이다. 

문화재청장 이건무는 대통령이 저 발굴현장을 방문한다는 시나리오에 따라 저 발굴현장으로 대통령을 안내할 예정이었다. 왜? 고고학 발굴은 누가 뭐라 해도 문화재청 소관이니깐 말이다. 

저 현장 방문이 생략된 것은 그래서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왜? 문화재는 지금도 그렇지만 저때도 언제나 데코레이션이라, 그런 데코레이션이 자기 주장을 하며 살아남는 방법은 저와 같은 최고 권력의 간택만큼 살아남기 쉬운 방법은 없었으니깐 말이다. 
 

이 환대가 길어지는 바람에 MB는 발굴현장 방문을 생략하고 말았다. 이것이 두고두고 통탄으로 남는다.

 
이쪽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대통령이 문화재현장, 특히 발굴현장을 찾으니 마네 하는 일이 하찮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다음 호에서는 그 문제의 심대성 중대성을 돌아보고자 한다. 

 

*** previous article *** 

 

MB 영접하러 고령까지 달려간 이건무(2) 환대에 취해 생략해 버린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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