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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441

허망한 이인로의 대답, "이거 제 글씹니다" 이인로(李仁老, 1152~1220)의 을 보면 고려 중기에 있었던 어떤 흥미로운 사건을 하나 기록하고 있다. 옛 어른들의 감정 - 흔히 배관拜觀이라고 하는 - 실력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해보도록 하자. 내가 일찍이 높으신 분의 댁[貴家]의 벽에서 초서(草書)가 적힌 족자 두 점을 보았는데, 연기에 그을리고 집안으로 샌 빗물에 젖어 형색이 자못 기이하고 예스러웠다. 그 시에 이르기를, 시가 적힌 단풍잎이 궁궐[鳳城]에서 나오니 紅葉題詩出鳳城 눈물 자국은 먹과 섞이며 오히려 분명하네 淚痕和墨尙分明 궁궐 도랑에 흐르는 물 흐려서 믿을 수 없네 御溝流水渾無賴 궁녀의 한 조각 마음을 흘려보냈다기에 漏洩宮娥一片情 이라고 하였다. 좌중 손님들이 모두 머리를 모아 보면서 당唐 · 송宋 시절 사람의 필체라 여겼다. 분.. 2023. 8. 11.
대량으로 써제낀 증정용 식민지시대 글씨 조선 말기~일제강점기 제법 이름있는 이의 필적은 일본에 많이 전해진다. 대개는 일본에 망명한 뒤 생활비를 조달하려고 팔았거나, 신세진 이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선사한 것이다. 조선-한국에 있었던 인물이 일본인을 만나도 으레 글씨를 써주거나 그림을 그려주곤 했던 모양으로, 요즘들어 그러한 작품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오고 있다. 그런 작품들을 보면서 몇 가지 드는 생각이 있다. 1) 금박종이나 호피선지를 둘러 휘황찬란하게 '표구(장황이 아니다)'한 현현거사玄玄居士의 글씨나 소호小湖의 난초를 흔히 만난다. 그런데 일본에서 일본 재료를 써서 만들어 일본인에게 준, 일본인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조선 19세기 말~20세기 초"라고 표기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단순히 만든 이가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미술사의 영역 안에.. 2023. 8. 11.
진화하는 달항아리, 이젠 재복신 달항아리-라는 이름도 비교적 근래 붙여진 것이지만-가 과연 좋기는 좋은 모양이다. 조선시대 달항아리가 부르는 게 값이 된 건 뉴스 축에도 못끼고, 현대 도예가의 달항아리(그것도 값이 만만찮지만)를 끼고 사는 사람이 늘었다. 하다 못해 달항아리 그림이나 사진을 사다 거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 자체야 뭐 나쁜 일이랴마는, "돈 들어온다"고 해서 달항아리 사진을 붙여놓고 자랑한다는 데 이르러서는 헛웃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하기야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시대가 변하면 아름다움에 대한 의식도 변하고 그것이 상징하는 뜻도 달라지게 마련이니까.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아름다운 건 누구나 봐도 아름다운 것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글쎄.... 60년대에 한국 문화재 전시를 유럽과 미국에서 하.. 2023. 8. 6.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그 답을 찾아서 (외전) 12세기 고려 문벌(경주김씨, 인주이씨, 해주최씨, 이천서씨, 광양김씨 등등등의 각 가계)의 가계도. 워낙 만수산 드렁칡마냥 얽히고 설켜서 복잡하긴 합니다만, 핵심은 간단합니다. 이들은 서로 혈연적 연계가 있었지만, 그것이 이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근본적 조건은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들의 정치적 행보를 사료에서 찾아보면, 비교적 가깝지 않나 하는 인물도 서로 반대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2023. 7. 22.
미끼를 물어분...이 아니고 미키를 도와준 후지츠카 한국 의학사醫學史 양대산맥 중 하나로 꼽히는 미키 사카에(삼목영 三木榮, 1903-1979)라는 분이 지은 란 책이 있다. 말 그대로 삼국시대부터 근대까지의 한국 의학서의 서지사항과 해제를 정리한 책이다. 초판은 1956년 나왔는데 등사謄寫로 120부만 인쇄한 자가판自家版이다(작년 말인가에 한국어 번역이 나왔다). 그 서문을 읽어보니, 도움을 받은 분들을 거진 한 페이지 통으로 할애해 적어놓고 있다. 그런데 그 중간쯤을 보니 "전 경성제대 교수 후지타 료사쿠(등전량책 藤田亮策, 1892-1960) 선생" 아래에 "돌아가신 同(필자 주: 전 경성제대 교수) 후지츠카 지카시 선생"이 나오는 게 아닌가 말이다. 이런 걸 보면 후지츠카를 의 신화나, 추사니 조선 북학파니 청대 고증학이니 하는 것의 연구자로만 기.. 2023. 7. 18.
이마니시가 베낀 후지츠카 소장 고려도경 이마니시 류(금서룡今西龍, 1875-1932)의 장서 상당수가 들어가있는 나라 천리대학도서관天理大學圖書館의 한국 고서 목록을 찾아볼 일이 있었다. 을 교정해 연활자본으로 낸 이마니시답게 그 스스로도 을 갖고 있었다. 18세기 사본이라니 지부족재본知不足齋本을 베낀 건가 싶은데 실물을 언제 만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근데 중요한건 그 위다. 달랑 6장이라기에 뭔가 싶었는데, 해제를 읽어보니 후덜덜. 1931년 7월 후지츠카藤塚 교수의 교시로 그의 소장본을 빌려 베껴서 지부족재총서본에 주석을 단다는 게 아닌가. 분명 이 후지츠카는 후지츠카 치카시(등총린藤塚鄰, 1879-1948)다. 그가 어떤 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데, 지금은 허공의 연기가 되었을테니 아무것도 할 수 없고(혹 하버드 옌칭에 .. 2023.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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