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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18

뉘였다가 세운 부여 군수리절터 목탑 중심기둥 아래 전문 인용하는 기사에서도 드러나고, 내 기억에도 분명 송의정 소장 시절이었다. 철두철미 박물관맨인 송의정이 윤형원 등과 더불어 인사교류 명목으로 2년인가 잠시 문화재청으로 파견나가 근무한 적이 있으니, 여담이나 이때 재미를 붙인 윤형원은 이후 한 번 더 문화재청 근무를 자청해 해양연구소에서 과장 2년인가 해 묵고 부여박물관장으로 튀었다. 애니웨이, 송의정 소장 시절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역점으로 벌인 발굴사업이 부여 군수리절터였다. 2005년 6월 14일자 내 기사가 이를 예고했으니,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부여 군수리 백제 절터 70년만에 재발굴1935-1936년 조선총독부 조사 이후 처음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백제 마지막 도읍 부여에 위치한 그 시대 절터로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 꼽.. 2019. 6. 7.
창녕 관룡사 석조여래좌상 명문판독기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292번지 관룡산觀龍山, 혹은 구룡산九龍山이라 일컫는 산 기슭에 관룡사觀龍寺라 일컫는 불교사찰이 있으니,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通度寺) 말사인 이 사찰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으나, 경내에 지정문화재가 밀집해 그 녹록치 않은 역사성을 증언한다. 그런 성보문화재 중 용선대龍船臺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이라는 불상 하나가 있다. 사찰 경내를 벗어난 용선대라는 바위 혹은 암반 위에서 사방을 조망하는 자리에 위치한 이 불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성내력을 알 수 없었으니, 그런 가운데서도 그 양식으로 보아 9세기 신라 불상이라는 통설이 암암리에 통용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2009년에 이르러 이 불상이 8세기 초반 통일신라시대 흥성기에 만들었다는 조성기가 다름 .. 2019. 6. 4.
4대천황에서 3대천황으로...세대교체가 된 문화재기자업계 호랑이 없는 골에 승냥이가 오야붕질 한다고. 문화재기자업계에 요런 일이 벌어지는 모양이라.... 한때 이 업계를 말아드시던 원로들이 이런저런 전차로 현장을 떠나야 했으니, 요새 이 업계를 호령하는 이들로 그네들 스스로가 3대천황이라 일컬으며 지들 시대가 도래했다고 떠들고 다닌다 하거니와 듣건대 조선일보 허모, 세계일보 강모, 그리고 우리 공장 연합뉴스 박모가 툭하면 술자리 마련하고는 그네들 스스로를 일러 3대천황이라 한다더라. 그러면서 그네들이 청산해야 할 적폐로 그 전시대 이 업계를 주름잡은 네 명을 거론했으니, 입만 열면 일고一考의 가치도 없단 말을 노래로 삼아 일고선생이라 일컬다가 어느날 훌쩍 기자 때려치고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으로 옮겨 적응하는가 싶더니, 이내 국립진주박물관장 공모가 나.. 2019. 6. 2.
"참으로 순조로운 발굴" "발굴은 그리하는 줄 알았지 뭐" 공주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은 그 발굴 전과정이 요새 기준으로 하면 생중계된 한국 최초의 발굴현장이다.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던 일이다. 뭐 그만큼 발굴이 개판이었다는 말이다. 기자들이야 언제나 발굴현장의 정보통제를 비난하지만, 솔까 언론에 완전 개방한 상태에서 발굴이 제대로 진행될 리 있겠는가? 우왕좌왕 개판이었다. 그에 더해 기자들 역시 발굴현장을 제대로 취재해 본 적도 없었다. 알아야 면장이라도 하는데, 난생 처음 접한 발굴현장은 그만큼 신기할 뿐이었다.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무령왕릉 발굴이 끝난 뒤 이 사건 보도를 내내 특종보도한 한국일보 취재기자 방담기다. 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보인다. "발굴 진행은 참으로 순조로왔습니다" 이 한마디가 무령왕릉 발굴 모든 것을 함축한다. 그날 무.. 2019. 4. 26.
내 분야에서는 나는 내가 세계 최고라 생각한다 April 26, 2014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한국 언론의 후진성 미개성을 질타하면서 외국의 여느 유수한 언론을 들이다 대면서 "보라, 우린 왜 이렇게 못하느냐"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맡은 분야에서는 내가 cnn 여느 기자보다 뒤진다 생각한 적 없고, 가디언 어느 기자보다 못하다 생각한 적 없고, 인디펜던트 여느 기자 나부랭이보다 못하다 생각한 적 없다. 나는 내가 맡은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 이걸로 산다. 기자? 욕해라1998년 12월1일 이래 한국문화유산사는 김태식이 없으면 기술이 불가능하다는 이 자세 잃지 않으려 했고, 지금도 그런 자세 유지한다. 2019. 4. 26.
마약과 간통, 부산 근무시절 기자생활 두 토막 93년 기자로서 첫 발령지인 부산지사 근무시절, 아무래도 항도 부산인 까닭에 뽕 먹고 유치장 신세 지는 사람이 다른 지역에 견주어서는 그리 많았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얼마전 상영한 송강호 주연 영화 '마약왕' 역시 주무대가 부산이라, 일본에서 가깝고, 배가 많이 드나드는 까닭에 부산은 마약 사범이 그리 많다. 듣자니 요즘 경찰 취재 패턴이 바뀌어서 이제는 기자가 형사계에 맘대로 들어갈 수도 없다는데, 그때는 마음대로 들락거릴 때라, 그뿐이랴? 그 형사계 한쪽에 마련된 철창으로 가서는 간밤에 어떤 사람들이 붙잡혀 들어왔냐 직접 심문 취재하던 시절이라, 거개 새벽마다 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마약사범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대개 헤롱헤롱 눈이 풀린 상태였으니, 그런 친구들한테 내가 못내 궁금한 게 있었으.. 2019.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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