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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1465

기요노 겐지(淸野謙次)의 풍납토성 탐방기(1926) 이 탐방기는 내가 발굴해 일찍이 연합뉴스를 통해 전문을 공개했으니, 아마도 이곳저곳에서 검색이 될 것이다. 이 탐방기는 1925년 을축년대홍수(乙丑年大洪水) 직후 현장을 탐방한 증언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이를 보면,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는 분명 풍납토성이 백제 왕성일 가능성을 지목했으며, 두번째로, 이미 당시에 기와가 출토됐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조선총독부에서는 이 풍납토성에 대한 이렇다 할 만한 조치라고는 1927년 고적(古跡)으로 지정한 것 말고는 없다. 그것도 당시 현존하는 성벽 구간만 지정했으니, 이것이 대한민국 사적으로 자동 빵으로 재지정되면서, 역시 성벽만 지정되고 말았다. 1967년 이곳을 발굴한 김원룡은 이곳이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 곳임을 직감했지만, .. 2019. 2. 1.
경기 이천 감은사지 삼층석탑 Three-storied Stone Stupa at Gameunsa Temple Site, Icheon, Gyeonggido Province, Korea. Goryeo dynasty Period? 어제 이천 답사 과정에서 한백문화재연구원 서영일 형이 추천한 곳 중 하나가 이천시 마장면 장암리에 소재하는 감은사라는 이름의 사찰 경내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이곳이 원래 古來의 절터였는지 내가 알 수는 없다. 어느 산인지 찾아보지 않은 어느 산 중턱에 사찰 시설이라 해 봐야 대웅보전이라는 간판을 단 주전主殿 한 채가 있을 뿐이며, 그 한쪽 넓은 마당에 사무실로 이용하는 간이 건물이 있을 뿐이다. 이상한 점은 이 사찰 경내 대웅보전 쪽에 언뜻 보아 중국의 근대 모작으로 보이는 석물 여러 점이 선 대목인데, 이곳 .. 2019. 1. 31.
창덕궁 대조전 장판 뜯다가 발견한 꿩무늬 옷본 적의본(翟衣本) 사라진 옛 문헌이 배접지(褙接紙)에서 발견되는 일이 간혹 있다. 배접지란 간단히 말해 땜질용 종이다. 한지韓紙가 생명력이 길다 하지만, 이 역시 세월 앞에는 장사 없어, 시간이 오래되거나, 혹은 많이 사용하다 보면 너덜너덜해지기 마련이라, 땜질을 하게 되는데, 글자나 그림이 없는 뒷면에다가 다른 한지를 대어 풀로 붙이는 일이 많으니, 이런 일을 배접(褙接)이라 하고, 그에 사용한 땜질용 종이를 배접지라 한다. 배접지라고 해서 새 종이를 사용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이 역시 고물 딱지 옛날 책으로 이제는 쓰임이 다한 책을 갈갈이 찢어발겨 사용하는 일이 많으니, 그래서 이런 배접지에서 용케 보물을 건지는 일이 드물지만 간혹 있다.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독립신문인가 창간호는 비름박에서 발견된 것으.. 2019. 1. 30.
청와대 불상, 이젠 조계종이 결단내야 한다 청와대 불상은 볼모다. 식민지시대에는 잘 생겼다 해서 '미남불상'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石佛坐像은 볼모다. 볼모란 무엇인가?인질이다. 인질이란 무엇인가?포로다. 그렇다면 누가 인질 포로 볼모로 잡고 있는가? 놀랍게도 부처를 절대의 인격체로 섬기는 대한불교조계종이다. 이 무슨 말인가? 높이 108㎝, 어깨너비 54.5㎝, 무릎 너비 86㎝인 저 불상은 경주시 도지동 이거사移居寺라는 절터에 있다가 1912년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초대 조선총독한테 진상되어 서울 남산 총독관저로 옮겨졌다가 오늘 현재 청와대에 갇혀 지낸다. 불법으로 제자리에서 탈취되어, 더구나 조선총독한테 진상되어 오늘에 이른 역사가 이토록 명백한데도, 도대체 저 부처님은 왜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가? 놀랍게도 그것.. 2019. 1. 29.
금오산 기슭 김천 갈항사지[金烏山麓 金泉 葛項寺址] 경북慶北 김천金泉 남면南面 오봉리五鳳里엔 갈항사지葛項寺址라는 통일신라시대 절터가 있다. 지금은 과수원 밭으로 변모한 금오산金烏山 기슭에 있던 절이 갈항사라, 발굴조사도 없고 적절한 유구遺構 보호대책도 없이 방치 중이다. 이곳엔 동서 쌍탑東西雙塔 석탑石塔이 있었으나. 조선총독부가 뽑아다가 서울로 옮기는 바람에 지금 이 쌍탑은 생뚱맞게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다. 김천 출신인 나로서는 단순한 애향심이라고 하고 싶진 않다. 내가 언젠가부터 꿈을 꾸었다. 이 일대 과수원 밭이랑 다 사서 중앙정부나 지자체에 기증을 하고 싶다는 꿈 말이다. 발굴도 해서 사역寺域 범위도 확인하고 나아가 쌍탑도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으면 한다. 쌍탑 해체 과정에서 수습한 사리장엄舍利裝嚴은 또 생뚱맞게 국립대구박물관에 가 있다.. 2019. 1. 27.
강진 백련사 동백을 기약하며 강진 백련사가 나로선 처음이다. 뭔가 유명하단 소문은 일찍이 들었으되 어찌하다 지금에야 왔다. 그렇다고 기회가 없지는 아니했으니 근처를 지날 일은 여러 번이었지만 번번이 놓치고 말았다. 이 고찰을 품은 산을 만덕산萬德山이라던가? 뒤쪽 혹은 옆쪽 어딘가로 돌아가면 다산초당이란다. 하긴 그러고 보니 강진은 정약용이 오랜 기간 유배생활을 한 곳이라 해서, 그의 글과 행적이 남긴 곳은 그가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죄다 유명해졌다. 그를 두고 개혁을 꿈꾼 사람이라나 어쩐다나, 그런 개혁이 기성 보수 권력에 좌절 좌초했다나 어쩐다나 하는 논리가 야금야금 생겨나더니 요샌 너도나도 다산이란 상품 못 팔아 환장한다. 대웅전 마당에 서니 저 먼 데로 바다가 조망한다. 절 주변으론 온통 동백나무 숲이다. 유난히 따뜻한 이번 .. 2019.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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