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1754

시경(詩經) : 특히 구성론과 역대 주석 이하는 성백효 역주 '현토완역 시경집전 上' 전통문화연구구회, 1996.10 초판3쇄 '이 책에 대하여'(5-8쪽)를 추린 것임. 1. 《시경(詩經)》의 출현 증거 논어 술이편(述而篇) “공자께서 평소에 늘 말씀하신 것은 시와 서와 예를 행하는 일이었다”(子所雅言 詩書集禮) 논어 태백편(泰伯篇) “배우는 자는 시에서 선한 마음을 흥기시키고 예에서 행실을 확립하며 악에서 완성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논어 계씨편(季氏篇) “(아들 伯魚에게) 너는 시를 배웠느냐? 사람이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가 없다.”(學詩乎 … 不學詩 無二言) 같은 계씨편 “사람이 되어가지고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배우지 않으면 얼굴을 담장에 대고 서 있는 것과 같다”(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墻面而立也與) 논어 양화.. 2018. 3. 11.
류서(유서·類書), 분류식 백과사전 '유서'란 글자 그대로는 분류식 책이라는 뜻인데, 간단히 말해 분류식 백과사전이다. 우리한테 익숙한 백과사전은 대개 가나다 혹은 ABC 순서로 표제어를 배열하고, 해당 항목마다 그 개념을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하지만, 이 유서(類書)라고 하는 백과사전은 동아시아에서 태동해 발전한 것으로, 주제 혹은 키워드별로 분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까닭에 類書는 해당 분류식 개념어를 적출하고는, 그 개념을 설명하거나, 그것을 주요한 소재로 활용한 先代 문헌에서 관련 구절을 그대로, 혹은 요약해서 배열하는데, 당나라시대에 나온 이런 종류로 대표적인 4가지로 《북당서초》와 《예문유취》와 《초학기》와 《백씨육첩》이 있으며, 이런 사업이 후대로 올수록 더욱 극성을 부려 특히 북송시대에는 《태평광기》라든가 《태평어람太平御覽.. 2018. 3. 11.
호삼성(胡三省. 1230~1302)과 《자치통감음주(資治通鑒音注)》 호삼성(胡三省)은 원래 이름이 만손(滿孫)이며 字가 신지(身之), 號는 매간(梅澗)이다. 5형제 중 3남이다. 영해(寧海) 중호촌(中胡村) 사람이다. 《論語》에 나오는 “吾日三省吾身”이라는 구절에서 삼성(三省)이라고 개명했다. 다른 字로는 경삼(景參)도 썼다. 보우(寶祐) 4년(1256)에는 문천상(文天祥), 육수부(陸秀夫), 사방득(謝枋得) 등과 함께 과거에 급제하여 進士가 되었으며 吉州泰和尉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가 연로하다 해서 부임하지 않았다. 나중에 경원부자계위(慶元府慈溪尉)에 임명되었으나 재임기간 중 경원지부(慶元知府) 여문옹(厲文翁)에게 죄를 얻어 파직되었다. 그러다가 문학행의(文學行誼)로 추천되었다. 사마광이 주편한 《자치통감(資治通鑑)》 연구에 몰두하고 《통감(通鑒)》을 교감했으며 제자들을.. 2018. 3. 9.
마숙(馬驌)과 《역사(繹史)》 《역사(繹史)》는 전체 160卷이며 世系圖 1卷과 年表 1卷이 별도로 첨부됐다. 찬저자(撰著者)는 청대(淸代) 마숙(馬驌. 1621~1673)이다. 강희(康熙) 연간에 판각된 판본은 전체 40册이며 版框 高廣은 匡高 19.7公分이고 寬은 14.3公分이다. 行格은 14行24字이며 小字雙行 36字이다. 판식(版式)은 백구(白口), 무어미(無魚尾), 좌우쌍변(左右雙邊)이다. 장정(裝訂)은 선장(線裝)이며, 수장인기(收藏印記)는 학여당발태(學餘堂發兌)이며, 서발제교자(序跋題校者)로는 이청(李淸) 서(序)가 있다. 사고전서(四庫全書)에서는 사부(史部) 중에서도 편년류( 編年類)로 배당했다. 부주(附註)로는 내봉제(內封題)로 “마씨역사”(馬氏繹史)라 했으며, 原鈐 “學餘堂發兌” 硃文印記가 있다. 卷端署에는 “추평마.. 2018. 3. 9.
사마정司馬貞과 《사기색은史記索隱》 사마정司馬貞은 사마천司馬遷 불후의 저작인 《사기史記》에 대한 해설 혹은 주석으로 시도한 완성물인 《사기색은史記索隱》 저자이나 이상하게도 행적은 불비하기 짝이 없다. 생년은 물론이요 몰년도 모조리 미상이다. 관적貫籍은 회주懷州 하내河內이며, 당 현종玄宗 개원開元 연간(713~741) 초기에 국자박사國子博士를 지냈으며, 이후 윤주별가潤州別駕와 굉문관학사宏文館學士를 지낸 이력 정도밖에 알려져 있지 않다. 《史記索隱》 외에 《補史記보사기》가 있다고 하며, 《전당문全唐文》 卷402에 그의 산문이 수록된 정도다. 이런 가운데 그의 행적은 《신당서新唐書》 卷132 유자현전劉子玄傳에 찔끔 보이며, 그 외 북송시대 도서목록집인 《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卷4에도 역시 간략한 기술이 나온다. 그 불후의 성과로 꼽히는 사기색.. 2018. 3. 9.
두헌(竇憲. ?~92)과 당고지금(黨錮之禁) 두헌(竇憲)은 字가 백도(伯度)이며 부풍(扶風) 평릉(平陵),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함양(咸陽) 사람이다. 두융(竇融)의 증손으로 후한시대에는 외척으로서 要職을 역임했다. 후한 建初 2年(77), 황제 장제(章帝)가 두헌의 누이동생을 황후로 세우자 외척으로서 동생인 두독(竇篤)과 더불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런 사정을 사서에서는 “賞賜累積, 寵貴日盛, 自王․主及陰․馬諸家, 莫不畏憚”이라 적었다. 황제가 내린 상이 쌓이고 총애가 날로 깊어지니 왕 이후 권세가로 그를 두려워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영원(永元) 元年(89), 竇憲은 刺客을 보내 太后 총신인 유창(劉暢)을 살해하고는 그 죄를 채륜(蔡倫)에게 덮어 씌우려 하다가 나중에 일이 발간되어 宮廷에 감금됐다. 후한서 두융전(竇融傳.. 2018. 3. 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