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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한국과 중국 양국간 공지空地 이야기를 했다.
이 공지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예를 병자호란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에 병자호란과 관련하여 알려진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병자호란 때 서울 인근까지 침투한 홍타이지가 서둘러 철수한 배경에는
당시 주둔지 주변에 천연두 환자가 발생했었다는 점-.
물론 이것이 청나라 군대가 서둘러 철퇴한 배경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서로 분리되었던 두 지역 사람들이 어느날 대면하는 것은
전염병의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은
신대륙 발견 당시 유럽인에 의해 원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전염병에 의해 쓰러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다음은 같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을 따라 남하한 우역-.
이 우역은 처음에는 청나라 영토인 심양에서 발생하였는데
호란 당시 청군과 함께 남하하여 한반도에 우역이 전국적으로 퍼졌다.
이 당시 우역이 얼마나 심했는가 하면 당시 조선의 소가 씨가 마를 지경이라
농우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그해 농사의 흉작을 의미했으므로
병자호란 자체의 경제적 타격은 다른 것보다 우역에 의해 소가 전멸한 것이 훨씬 더 컸다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주변에서 번져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장벽으로서
북쪽은 공지,
남쪽은 바다가 그처럼 중요했던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이러한 자연적 인공적 장벽이 없이 대륙으로 열도로 개방되어 있는 상태였다면
조선후기의 전염병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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