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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한국인의 기원과 이동23

야요이인 논쟁에 한국 학자들이 참여해야 일본의 야요이인 논쟁에는 한국 쪽 학자들 참여가 필요하다. 결국 한국 쪽 이야기가 없으면 야요이시대에 대한 논의는 반쪼가리가 될 수밖에 없다. 야요이인이 한반도에서 갔네 안갔네 아무리 떠들어 봐야한반도를 모르면 전부 공염불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을 모르는데 여기서 일본으로 갔는지 안 갔는지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결국 야요이인 논쟁은 한국 학자들이 대거 참여해야 하는 주제다. 야요이인 논쟁은 일본사이기도 하고 한국사이기도 하고 그렇다.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주제다. 2025. 2. 15.
일본에서 조몬 농경론 밑밥을 까는 이유 일본에서 나오는 주장 중에 조몬 농경론이라는 게 있다. 조몬시대, 흔히 생각하듯이 수렵채집만 한 것이 아니라 원시적이긴 하지만 초보적 농경이 있었다는 것으로 잡곡이나 도작 농경 같은 것은 아닐지라도 팥이라던가 녹두 등 쉬운 작물 재배는 있었다는 것인데, 이런 작물도 아마도 한반도에서 들어온 것일 것이다, 라는 전제를 깔기는 한다. 일본에서는 왜 이렇게 조몬농경론縄文農耕論에 집착하는 것일까?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에서 신석기시대 농경론을 입증하기 위해 애쓰는 정도보다일본에서 조몬 농경론을 입증하고자 하는 시도가 훨씬 집요한 것 같다. 글쎄-. 필자가 보기엔 일본에서도 조몬시대 초보적 농경이 있었다는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이게 뭐 대단한 농경이 아니라는 것은 그쪽도 잘 안다고 본다. 문제는 이러한 초보적 .. 2025. 2. 15.
바다 건너 저편: 빡센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처 앞에서 기자의 범금팔조와 한 고조의 약법삼장이 매우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약법삼장은 과연 이것이 존재했겠는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모양이다. 이미 거대 제국으로 커져버린 한 제국이살인자, 상해자, 도둑 셋만 처벌한다는 간단한 법만으로 다스려졌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일종의 프로파간다였을 것이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전국시대 이래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갈수록 빡세지는 세상에서 도피처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희망이 반영된 이야기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주나라를 피해 망명한 기자가 단 여덟 개 법조항만으로 조선을 다스렸다는 이야기는그 자체 전국시대 이래 중원이 그 만큼 법가적 통치국가화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갈수록 빡빡해지는 당시의 중국 입장에서 볼 때, 황해 바다 건너 저편에 신선의 이야기.. 2025. 1. 1.
기자 법금팔法禁八條와 한 고조의 약법삼장約法三章 기자가 조선을 통치할 때 써 먹었다는 범금 팔조. 여덟 개 조항 중에 세 개만 남았다고 하니, 相殺以當時償殺, 相傷以穀償, 相盜者男沒入爲其家奴, 女子爲婢, 欲自贖者, 人五十萬. 내용은 이렇다. 조선시대에는 이 3개조에 오륜을 붙여서 범금 팔조를 복원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고조가 천하를 얻은 뒤 가혹했던 진나라의 법을 대신해 백성들과 함께 휴식하자고 정했다는 이른바 약법삼장-. 그 내용은 이렇다. 殺人者死、傷人及盜抵罪이건 범금팔조와 같은 이야기 아닌가? 살인자,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 자, 그리고 도둑이 셋만 다루고 있다. 약법삼장과 기자의 범금팔조 중 남아 있는 세개는 사실 같은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래서 내리는 결론은? 기자 범금팔조는 인류의 원시적 법규를 제도화 한 이야기라 약법삼장.. 2025. 1. 1.
야요이시대 농경민 이주의 의문 어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고고학자분으로부터 야요이시대에 관련된 사실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 최근 거의 정설이 되었다는 야요이시대 극초기(조기) 인구이동에 대한 도설이다. 첫 단계는 진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남해안 일대 좁은 지역에서 일본열도로 이주민이 발생한다. 다음 단계는 보다 넓은 지역에서 일본으로 이주민이 발생하여 보다 풍부한 한국청동기문화가 이식된다. 여기서 관심의 대상은 벼농사를 가지고 건너갔다는 첫 번째 시기(유우스 1식)다. 이 시기에 일본에 처음 출현한 이주촌은 상당히 고도로 발달한 관개수로, 수전, 환호로 둘러싸인 촌락 등 완성형 도작 촌락이 처음부터 나오는 모양이다. 그러면 이러한 완성형 도작 촌락이 그 반대편 진주 일대에서 보이느냐.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관개수로, 수전, .. 2024. 12. 21.
1966년 4월의 조선일보 기사: 기마민족도래설 이것이 1966년 4월, 일본학계의 소식을 전하는 삼불 선생의 언급인데 이 기사에서 에가미 나미오 선생의 "기마민족도래설"이 소개되었다. 이보다 앞선 소식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재 신문 검색으로는 나오는 최초의 기사로 에가미 선생의 이 주장이 대중에 확산되면서 한국인은 기마민족의 후예라는 통념이 1980년대 민족주의 열풍을 타고 급속히 퍼져나갔다. 2024.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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