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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광개토왕 비문에 나온 고구려 기병과 왜병의 대결 동영상

by 초야잠필 2022.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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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과 동영상은 신라성을 포위한 왜병을 고구려 기병이 공격하여 포위를 푸는 장면이다.

광개토왕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0년(400) 경자庚子에 왕이 보병과 기병 도합 5만 명을 보내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남거성男居城에서부터 신라성新羅城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왜군이 가득하였지만, 관군이 도착하니 왜적이 퇴각하였다. (고구려군이)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任那加羅 종발성從拔城에 이르니 성城이 곧 항복하였다.


https://youtu.be/_6i56BRisgc

신라성을 포위한 왜병과 포위를 풀기위해 도착한 고구려 군 5만


농담 삼아 써본 이야기인데-.

보다시피 이 장면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장면인데, 필자가 생각하는 광개토왕비문에 묘사된 당시 상황과 매우 닮았다고 생각하여 링크해 둔다.

왜가 광개토왕비문에 묘사된 것처럼 신라 경내에 대거 들어왔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본다면,

그 당시 일본열도는 사실 철기 생산도 제대로 안될 때였다. 스에키로 상징되는 경질토기 도입도 없었다.

열도에는 소도, 말도 없었으며 국가운영에 필요한 기본적 노하우 자체가 아직 도입이 되지 않았던 때였다. 아마 글자도 몰랐을 것이다.

단지 야마토를 정점으로 한 일본열도 서부의 정치적 통합은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었다고 보는데,

이런 힘을 바탕으로 오로지 사람 수로 밀고 들어왔을 것이라 본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왜병은 말타고 전쟁하는 것을 한반도 들어와서 처음 봤을거라고 생각한다.

위 동영상에 나오는 딱 오크 정도의 방어구와 무장 (활과 창)을 하고 숫자로 압도하며 신라성을 포위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4말 5초, 광개토왕비에 묘사된 장면은 신라 입장에서 본다면 임진왜란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동영상에 나온 기병의 숫자가 엄청나 보이지만 실제로 고구려 병 5만명이라 하면 동영상에 나온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사진의 상암 월컵 경기장 수용인원이 6만이다. 5만이 얼마나 많은 숫자인지 짐작이 간다.



*** 편집자注 ***

광개토왕비가 당대 고구려의 증언이라 해서 그에 적힌 일들을 어느 후대 문헌기록보다 사실史實에 기반한다는 거의 종교적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 있다.

사실인가?

개소리다.

당대의 증언일수록 의심해 봐야 한다.

근자 전 정권시대에 어떤 망나니 교수 출신 한 놈을 보호한답시며 서초동에 친권력 성향 사람들이 관제데모를 벌인 적 있으니, 그네들이 이르기를 그 숫자를 물경 백만이라 개뻥을 쳤다. 백만? 웃기는 소리하고들 자빠졌네

광개토가 왜병 토벌한다고 지땅도 아닌 남의 땅으로 기병과 보병 5만명을 동원해? 5만은 있을 수도 없고, 설혹 그에 가까운 숫자를 동원했다 한들 어중이떠중이 다 합친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보급부대 다 합쳐봐야 그리될까 말까다.

200년 뒤 신라가 백제를 이땅에서 사라지게 하겠다 해서 다닥다닥 동원한 병사가 5만이었다. 것도 어중이떠중이 거시기 다 합친 숫자를 그네들 스스로 일컬어 5만이라 했다.

믿어? 오빠는 믿어도 광개토를 믿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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