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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평면도를 보면 이 남월왕묘는 묘도墓道, 전실前室, 후실後室의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며, 전실과 후실은 각각 양쪽에 측실側室을 둔 구조임을 본다.
이는 같은 시대 한대漢代 지배층 계층의 무덤과 근간이 통하는 것으로, 짙은 한문화 영향을 풍긴다.
전체 배치 방향을 보면 남북 장축이라, 북쪽 정중앙 지점에 이 무덤 주인공이 위치한다.
이는 경복궁 배치를 보면 이해가 훨씬 쉽다. 경복궁 경역 배치를 보면 전체 중간쯤을 동서 방향으로 짤라서 그 앞쪽이 왕이 국가 공식 정무를 보는 公의 공간인데 반해 뒤쪽은 사적 공간이라, 이 뒤는 실은 왕이 주인이 아니라 그 마누라 차지다.
따라서 경복궁 전체 배치를 보면 왕은 언제나 그 북쪽 중앙, 곧 근정전 자리를 차지하는데, 이래야 태양과 마주보며, 그래야 이 절대 군주를 향해 그 전면에 도열한 신하들은 왕을 향해 허리를 굽히게 되는데, 이를 바로 배알拜謁이라 한다.
반면 왕은 남쪽을 향해 태양과 맞다이를 치는데 이를 바로 남면南面이라 한다.
곧 동아시아 천문우주관에 의하면 언제나 주인은 북쪽 정중앙, 그러니깐 하늘의 주인인 북극성 자리를 차지한다 해서 북쪽 중앙에 위치한다.
저 남월왕묘 역시 그에서 한 치 어긋남이 없어 그 주인은 북쪽 중앙, 그러니깐 후실後室 중앙 지점에 떡 하니 버티고(실은 관짝에 드러누웠지만) 남쪽을 향해 두 눈 부릅뜨고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묘도는 말할 것도 없이 무덤 안과 밖을 통하는 통로라, 무덤방이 보통 땅을 파고 들어가므로 이런 묘도는 보통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경사를 지어 들어간다 해서 중국고고학에서는 사파묘도斜坡墓道라 일컫는 그 시설로, 대체로 한반도 이런 묘도가 땅과 평행선을 이루는 점과는 사뭇 다른 점이다.
다음 사진이 바로 묘도라, 이런 식으로 내부를 관람하게 했으니, 본래 묘도를 통해 내부를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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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도를 들어서면 문을 따고 첫번째 공간에 들어가는데 이곳이 바로 전실前室이라, 글자 그대로 앞에 위치하는 공간이라 해서 그리 부른다.
이 전실은 그 동서쪽에 각각 길다란 창고를 별실로 거느리게 되는데, 이 전실과 그 양쪽은 동아시아 천문우주관에 의하면 실은 신하들 차지다.
이 신하는 크게 문관과 무관으로 나뉘거니와, 그 양쪽 동이실東耳室과 그 반대편 서이실西耳室이 각각 문관과 무관이 도열하는 자리다.
동이실, 서이실이라는 명칭은 현대 고고학도들이 부여한 것으로 그 발상은 실은 아주 간단해서 사람 얼굴로 치면 얼굴 중앙을 기준으로 그 양쪽 귀가 들어가는 자리라 해서 이런 딸린 공간을 이실耳室이라 하고, 그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동쪽은 동이실, 서쪽은 서이실이라고 구분할 따름이다.
저런 동이실 서이실은 말할 것도 없이 껴묻거리가 들어가는 공간인데, 이걸 제대로 중국 고고학계도 구분하지 않으려 하는데, 문관과 무관 이 발상을 이해하면 이해가 쉬운 측면이 많다.
이렇게 양쪽 귀때기 실을 거느린 전실을 지나면 문짝이 또 나오고 그 문짝을 따고 들어가면 비로소 주인 자리가 나오는데, 이 공간 전체를 후실後室이라 한다.
이 후실 역시 그 양쪽에 딸린 공간 하나씩을 더 두는데 앞에서 본 전실의 그것과 기본 발상을 똑같다. 다만, 구조는 약간 달라 전실 양쪽이 문관과 무관이 도열하는 자리를 형상화했다면
이 후실 양쪽 딸린 공간은 후비后妃가 들어서는 지점을 형상화한 공간 배치로 본다. 내 말이 맞을 것이다. 왜? 내가 틀린 말 하는 거 본 적 있는가?
이 후실 전체 양상을 세분하면, 그 정중앙 남쪽을 바라보는 지점에 무덤 주인공이 들어서고, 그 뒤편에 창고를 하나 뒀으니 이는 요새 이부자리 발상과 똑같다.
곧 저기는 주인장 잡물을 넣어두는 공간이다. 그래서 뒤에 위치하며 무엇인가를 넣어두는 창고라 해서 후장실後藏室이라는 표현을 썼다.
무덤 주인이 누운 공간을 주곽실主槨室이라 표현했는데, 무덤 주인공을 관과 곽 이중잠금장치로 그 시신을 안치한 공간이라 해서 저리 부른다.
양쪽 딸린 공간은 그 방향에 따라 동측실東側室 서측실西側室이라 했으니, 이는 현대 고고학의 명명에 지나지 않는다.
저 두 공간은 이미 말했듯이 후비라는 왕의 여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이 공간 배치와 그 공간 배치에 작동하는 동아시아 천문우주관을 알아야 한다.
이런 걸 모르고 무덤 구조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그런 고고학을 우리는 개돼지 고고학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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