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서 여러번 경제적인 이유, 특히 토지이용률 문제로 신라 적석목곽분이 퇴출되었다고 말했으니, 그에서 비롯되어 봉분 하나에 여러 사람, 특히 부부를 살처분하는 석실분이 등장했다는 말을 했거니와,
이런 문제에 봉착하기는 영산강 유역도 마찬가지라. 실로 희한하게도 저 머나먼 경주 땅에서 경제성 제로인 적석목곽분이 퇴출되던 6~7세기 무렵, 영산강 유역에서도 똑같은 문제에 봉착했으니, 이들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타개해나가니 그것이 바로 벌집형 고분이다.
이 벌집형 고분은 그 자체가 씨족, 혹은 가족공동체라. 봉분 하나에다가 매장주체시설을 많게는 수십 개를 조성한 공동묘지를 말한다.
동시대 다른 곳 공동묘지가 구역으로 중심으로 발달했다면, 이곳은 봉분 하나로 그것을 단칼에 해결하려 했으니, 신라 적석목곽분 중형 정도 되는 봉분 하나에가가 수십 구 시체를 살처분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나주 지역 이 시대 축조한 무덤을 보면, 마치 겉모양은 신라 무덤을 상기케 하나니, 물론 그 모양이 조금은 달라, 지금은 같게 된 그 모습은 현대기에 와서 소위 정비하는 과정에서 그리된 듯하고, 그것이 축조 운영된 무렵에는 그것과는 조금 달라, 곳에 따라 각이 지기도 하니,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애초 봉분을 하나로 쌓은 것이 아니라, 아마도 같은 봉분에다가 시체를 계속 묻어가면서 봉분을 덧대어 쌓아간 현상이 아닐까 하노라.
토지이용률, 이 문제가 이토록 심각하다. 하지만 내가 본 그 어떤 한국고고학 글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은 전연 보이지 않고, 죽어나사나 무덤 양식 변화요 토기 양식 변화며, 외래계 유물 부장양상이 있을 뿐이다.
(2018.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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